그답지 않은, 난해하지 않은 이 곡 고독한 천재의 탈출구 아니었을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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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호 27면

쇤베르크의 자화상. 그는 그림에 상당한 소질이 있어 개인 전시회도 열었으며 표현주의 거장인 칸딘스키의 관심을 끌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세상은 흰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고 아, 오늘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라네. 언제부터인가 거리에서 캐럴도 들려오지 않을 만큼 민숭민숭해져 버렸지만, 아무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지 않게 되었지만, 그리고 이런 날이라고 싱숭생숭할 나이도 지났지만, 거참 온누리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니….

詩人의 음악 읽기 쇤베르크의 크리스마스음악(Weihnachtsmusik)

밤에는 이 작업실에서 기어나와 아내를 만나러 모처럼 집에 가리라. 아들 녀석은 제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갔겠지. 나는 이 아침에서 저녁이 올 때까지 여러 잔의 퍼콜레이터 커피를 끓여 마실 테고 포털을 드나들거나 책을 뒤적이거나 드러눕는 듯한 자세가 만들어지는 이케아 의자에 앉아 음악에 귀를 기울이겠지. 몇 통의 스팸문자가 날아올 테고 형광등 알을 몇 개 갈아야 할 것 같고 어쩌면 캐나다에서 창호가 안부전화를 걸어올지 모른다. 두 달 전에 스물두 살 나이로 죽은 그의 딸에게 명복을! 생각보다 담담하게 “주희가 갔다” 하던 전화 목소리 앞에서 왜 그가 사는 캐나다의 짙은 옥색 호수가 떠올랐을까. 루이스 호였던가. 나는 그 탁한 물빛이 두려웠었다.

누군가는 스물두 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의 스물두 살 기억은 찬란했을 것으로 간주한다. 그때 애인이 있었으니까. ‘네가 나를 받아주지 않으니 죽을 수밖에 없지만 당장 죽지 않고 잠시 기다려 보겠다. 하지만 너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는 없다’. 운운하는 편지를 띄우고 학교를 자퇴했다. 전남 장성 백양사 청류암으로 배낭 가득 책을 지고 찾아가 틀어박혔다. 그 책들을 다 읽으면 죽으려고 했던 것일까. 돈이 떨어진 그해 5월 17일 밤 광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여관을 잡을지 서울로 갈지 망설이다 상경했는데 다음 날 광주 사람들이 엄청나게 죽었다. 그녀는 마음을 바꿔 내 사람이 됐다. 목숨을 건 협박이 통하던 올드패션 러브스토리다. 사랑은 목숨을 거는 결사(決死)의 문제라고 나는 주장했고 결사 항쟁하던 시민들은 봄꽃 아래 떼죽음을 했다. 그해 12월 24일 그녀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열두 번의 크리스마스를 더 함께 했건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무지 전혀.

쇤베르크는 ‘어떻게 사람은 고독해지는가’라는 에세이를 썼다. 무조라든가 12음 음열기법으로 이루어진 생경하고 쭈뼛쭈뼛한 곡을 쓰면서 왜 세상 사람들이 자기 음악을 차이콥스키 곡처럼 환호해 주지 않는지 괴로워했다. 그가 몰이해 속에서 고독하다며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나의 음악은 현대적인(난해한) 것이 아니라 연주가 잘못된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중요한 작곡가가 되려면 중요한 작품을 작곡해야 한다.” 심지어 여러 음악가가 모여 있는 리허설 장에서 “이곳에 나 이외에 다른 작곡가가 또 있습니까?”라고도 했다. 자부심 과잉의 그가 음악의 혁명가였고 천재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런데 차이콥스키를 듣듯이 감성 충만하게 쇤베르크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정화된 밤’을 들어보자. ‘달에 홀린 피에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판타지’를. 그리고 현악 사중주들을 들어보자. 쇤베르크 음악이 난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책이 많이 나와 있듯이 열거한 작품들 하나하나가 한결같이 감성충만이다. 그는 이지의 영역이 아니라 실제로는 충만한 감성의 세계를 추구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고독했다. 그가 고독했기에 마치 탈출구처럼 했을 것 같은 작업을 나는 알고 있다. 쇤베르크의 크리스마스음악(Weihnachtsmusik)이라는 매우 안 알려진 곡. 현악 사중주에 오르간과 피아노가 따르는 6분짜리 곡이다. 이 곡을 처음 듣고 작곡가 쇤베르크를 떠올릴 사람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으리라. 바흐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 차이콥스키 같기도 한 전형적인 조성음악(Tonal Music)이다. 구슬프고 애잔한 멜로디 중심의 곡으로 세기말 빈의 아르누보 스타일과도 표현주의와도 완전히 거리가 멀다. 난해시를 쓰는 시인이 대중가요 가사를 쓴 격이랄까. 그런데 작품연보에서 빠져있기 일쑤인 이 곡이 어쩌면 그가 남달리 아끼는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쇤베르크의 크리스마스 음악을 계속 리플레이하고 있다. 쇤베르크는 고독했다. 멀고 광활한 캐나다 땅에서 황망히 죽은 친구의 딸도 고독했다. 다음 날 죽었을지 모를 그해 그날 광주 터미널 인근 아저씨들의 충충한 표정도 고독했다. 물론 지금 나의 크리스마스 이브도 고독하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기억나지 않으므로. 그녀와의 지난날이 전혀 기억나지 않으므로. 기억나지 않아야만 하는 세상의 모든 지난날을 위해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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