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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애정남’ 필요한 홈플러스 편의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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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

“안녕하세요. 애매한 것을 정하는 남자, 애정남입니다. 오늘은 대치동에 사는 김상생씨가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Q: 저희 동네에 가게가 하나 생겼는데요. 야채코너가 있고 동네수퍼보다 물건이 싼 걸 보면 SSM(대기업 운영 수퍼마켓) 같기도 하고, 삼각김밥 팔고 24시간 운영하는 걸 보면 편의점 같기도 합니다. 이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번 주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에 이런 사연이 소개되지 않을까 싶다. 21일 홈플러스가 시작한 편의점 ‘365플러스’ 1호점인 서울 대치점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일단 매장이 130㎡(40여 평)로 일반 편의점의 두 배가량이었다. 파는 물건 역시 ‘편의점스럽지’ 않다. 매장 입구에는 야채·정육 코너가 배치됐다. 감자·양파·마늘·쇠고기·닭고기까지 팔았다.

 이런 점을 미리 알고 있던 강남·서초슈퍼마켓협동조합은 지난 10월 말부터 이곳 앞에서 ‘홈플러스 입점 저지’ 집회를 벌였다. 서울시에 사업조정신청도 냈다. 사업조정이란 대기업 진출로 중소기업의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양측이 사전에 합의하도록 정부가 중재하는 제도다. 하지만 ‘편의점’ 1호점은 결국 그 자리에 들어섰다. ‘사업조정’ 대상에 편의점이 포함되지 않아서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9조에는 ‘수퍼마켓’과 ‘소형 수퍼마켓’을 조정대상으로 명시했다. 중소기업청은 소상인 보호를 위해 ‘대기업 직영 편의점’도 조정대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365플러스 1호점은 현재 홈플러스 직영이지만 4개월 내에 가맹점으로 전환한다는 조건으로 조정대상에서 벗어났다. 중기청 관계자는 “편의점과 수퍼 구분이 애매해 대기업이 편법 운영할 소지가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표준산업분류에 따라 ‘165㎡ 미만 24시간 운영’이라는 기준이 있지만 현실에는 그보다 넓은 매장을 가진 편의점과 24시간 운영 수퍼마켓이 존재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홈플러스의 편의점 가맹사업을 허가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SSM과 동일한 기준으로 규제하기 힘들게 된다. 애꿎은 편의점 가맹주가 피해를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생하자고 일일이 법을 만들어 경찰 출동하고 쇠고랑 차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결국 ‘애매한 틈’을 타고 홈플러스 편의점 사업은 시작됐다.

심서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