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의 ‘여자는 왜’] “금연” 외치는 왕년의 골초 … 놀랍다 여자의 변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6면

얼마 전 후배 L은 우연히 동창생 P를 만났다. 여자친구 S와 함께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보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는데 유모차를 옆에 둔 여자가 다른 손님들에게 뭐라고 불평하는 소리가 들렸던 거다. 높다란 음색이 귀에 익어 돌아보니 여자 동창생 P였다. 오랜 만에 인사를 나누고 사연을 들어보았다. 테라스 쪽 흡연석의 담배 연기가 금연석인 실내로 흘러드니 문을 빈틈없이 닫으라고 주의를 줬다는 거다.

 L로서는 뜻밖이었다. P로 말하자면 재학 시절 애연가로 유명했다. 단지 내뿜는 연기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담배를 배우려는 L에게 “시킨다고 멘솔이 뭐냐?”고 머리를 쥐어박던 그녀였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덧 금연석의 권리를 주장하다니. 쳇, 멘솔로 시작하면 금방 배울 수 있다고 꼬드겼던 게 누구였더라.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고전적 광고 카피가 있긴 하지만 이건 꽤나 뜻밖의 일 아닌가.

 P와 간만에 안부를 주고받는 동안 S는 갤러리에선 보지 못했던 동경의 눈빛으로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 하긴 유모차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아이를 보니 P의 변화가 이해 가긴 했다. 몇 년 전 결혼했지만 일 때문에 아이 생각은 없다고 주변에 공언을 했다는데 결국 뒤늦게 아이를 가진 모양이다. P로 말하자면 골초 커리어우먼에서 어머니로 놀라운 변신을 한 셈이다. 그러니 무죄?

 P의 얘길 들어보니 간만에 큰맘 먹고 전시회 관람을 위해 나왔으나 카페에서 만나 교대로 아이들을 봐주기로 했던 비슷한 처지의 여동생이 갑자기 나올 수 없게 되어 그냥 들어가려던 참이라고 했다. S가 이왕 우리도 커피를 마시러 왔으니 한 시간 정도는 대신 봐준다고 하니 반색하며 좋아한다. 그러나 채 10분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오고 만다. “기저귀 갈 때도 된 것 같고 아무래도 눈에 밟혀서.”

 마침 그날 전시회의 주제는 치명적인 여인, ‘팜므 파탈’이었다. 이들 속에도 어머니의 모습이 있겠지. 하지만 천차만별 여성의 모습 속에서 공통된 어머니상(像)을 분리해내는 것은 L로서는 아직도 불가능하다. 아마 남자는 영원히 불가능할 거다.

소설가 조현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아닌 햄버거의 역사』 저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