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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초기 우주가 자몽만 할 때 모든 소립자에 질량 부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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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28면

요즘 ‘힉스입자’가 대서특필되고 있다. 그게 뭐길래 그렇게까지 보도할까. 힉스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주는 네 가지 힘으로 움직인다. 첫째가 중력. 뉴턴이 사과 떨어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는 그 만유인력이다. 둘째는 전자기력이다. 원자를 묶고 전파를 만들고 번개가 치게 만드는 힘이다. 셋째는 핵력 또는 강한 힘(Strong Force)이다. 원자핵 속의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어 두는 힘이다. 넷째는 동위원소가 붕괴하고 방사선을 내게 하는 약력(Weak Force)이다.

김제완의 물리학 이야기 질량의 원천 힉스입자

19세기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은 전기·자기 통합이론인 맥스웰 방정식을 만들었다. 자기장 속에서 전압이 발생하고 거기에 전기를 흘리면 주위에 자기장이 생긴다는 데 착안해 ‘전기와 자기는 모습은 달라도 하나의 실체’임을 밝혀냈다. 전기와 자기 이론을 통합해 전자기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전자기 이론을 원자에 적용했을 때 이론과 실제 관측 결과가 정확히 맞아 들어간다는 게 확인됐다. 전기양자역학이다. 그런데 50년대까지만 해도 전기양자역학을 써서 전자의 자기능률(자석의 세기)을 계산하니 답이 무한대였다. 뭔가 잘못됐다는 의미다. 그런데 50년대 초 이를 맞는 답, 즉 ‘재규격 이론’으로 만들어 낸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 도모나가 신이치로 및 슈빙거였다.

60년대엔 전자기와 약작용을 통합한 이론, 즉 전기양자역학과 약작용(Weak interaction)을 통합한 전기·약작용 이론(Electro·Weak theory)을 개발하려는 노력들이 일어났다. 퀴리 부인이 발견한 라듐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지배하는 힘이 약한 힘 또는 약작용이다. 그런데 새 이론을 개발하려 해도 계속 ‘무한대 답’이 나왔다. 전기양자역학에서는 힘을 전달하는 광양자(빛의 원자)에 질량(무게)이 없다. 그런데 약작용을 전달하는 힘의 입자 ‘약한 보손(Weak Boson)’엔 질량이 있어야 한다. 질량이 없는 힘의 입자는 빛처럼 얼마든지 날아가지만 질량이 있는 ‘약한 보손’은 멀리 못 가고 원자핵 정도의 거리에만 힘이 국한된다.

바로 이 질량을 갖고 있는 입자를 활용해 어떤 현상을 계산하면 답이 늘 무한대가 됐다. 다시 말해 아무리 이론을 만들어도 그 이론을 써서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부정확)하다는 의미다. 그런 이론은 쓸모가 없다. 또다시 ‘답이 무한대가 나오지 않는 계산 가능한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숙제가 됐다. 66년 스티븐 와인버그와 압두스 살람 교수가 거의 같은 시기 각각 독립적으로 새 이론을 만들어 이를 해결했다. 와인버그-살람 또는 W-S 이론이란 것인데 답이 무한대가 아닌 유한대로 나온다. 이론의 핵심은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처음부터 질량을 갖는 것이 아니다’는 점이다.

나중에 질량을 주는 입자에 대한 논문은 영국 물리학자 피터 힉스와 다른 두 연구팀이 동시에 발표했다. 모두 8명이 관여돼 있다. 그런데도 힉스입자로 불리게 된 것은 작고한 한국인 물리학자 이휘소 때문이다. 그는 ‘게이지 이론’이란 해설 논문에서 이 입자를 힉스입자라고 불렀다. 그래서 ‘힉스입자’와 와인버그와 살람의 전기·약작용 이론은 물리학계에 퍼지게 됐다.

원자핵보다 작은 초기 우주의 진공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너지면서 우주는 갑자기 빠른 팽창을 한다. 눈깜짝할 찰나보다 더 짧은 약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초(10의-36승) 만에 자몽 크기만큼 된다. 진공이 무너질 때 힉스입자와 질량이 없는 ‘난부-골드스톤’ 입자가 나온다. 난부-골드스톤 입자는 약작용 힘의 전달자인 W와 Z입자에 질량을 제공하고 없어진다. 살아남은 힉스입자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모든 입자의 기본 요소인 전자와 쿼크가 질량을 얻게 한다. 모든 소립자(素粒子·더 쪼갤 수 없는 기본 입자, 예를 들어 전자)들이 비로소 질량을 얻게 되는 것이다. 힉스입자가 나타나기 전 입자들은 우주를 공기 속처럼 힘 안 들이고 움직였다. 그런데 힉스입자가 나타나면서 우주는 물 같은 액체로 변한다. 날씬한 물고기는 힘 덜 들이고 물속에서 잘 움직이지만 뚱뚱한 사람은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물고기에 해당하는 전자는 힘을 작게 들여도 움직이기 때문에 작은 질량의 입자가 되고 뚱보 같은 톱쿼크(쿼크라는 소립자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는 큰 질량을 갖게 된다.
최근 유럽핵물리공동연구소(CERN)가 힉스입자의 영상이 포착된 것 같다고 발표했다. 아트라스와 CMS 두 팀이 “질량이 양성자의 약 125배 되는 새로운 입자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게 힉스입자라면 와인버그와 살람이 제시한 이론의 모든 근거가 다 발견된 것이고 그 이론은 전기양자역학처럼 확고한 반석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발표대로 125배밖에 안 된다면 좀 어려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진공 자체가 불안정할 수 있어 ‘초대칭 이론’이란 어려운 개념이 도입돼야 하는데 CERN의 데이터에선 초대칭 이론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힉스입자의 질량이 양성자의 125배라면 초대칭 이론이 성립하는 것이므로 초대칭 이론 자체가 힘을 얻게 될 수 있다. 물리이론은 이렇게 드라마처럼 얽히고설키는 묘미도 보여 준다. 그래서 과학은 멋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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