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할래, 봉사할래 … 벌칙 선택권 주니 마음이 움직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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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호기심에 소화기를 터뜨린 연제중 학생들이 청소 벌칙을 받고 있다. 김영환 학생부장(오른쪽)이 청소를 돕고 있다. [부산=송봉근 기자]

“이○○, 박○○, 김○○…. 오늘 느그들 수업 잘 들어야 한다. 알았제.”

 7일 부산 연제구 연제중의 1학년 6반 한문 수업시간.

 이영희(53) 교사가 ‘수업점검표’에 적힌 다섯 명을 차례로 호명하며 당부의 말을 건넸다. 이들은 지난주 수학 시간에 잡담을 하다 ‘수업점검표’ 벌칙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매시간 수업이 끝날 때마다 해당 교사로부터 수업에 열중했다는 확인을 받는 벌칙이다. 송모(13)양은 확인을 받기 위해 이 교사가 가르친 명심보감 구절의 뜻과 음을 교과서에 빼곡히 적었다.

 이어진 쉬는 시간. 3학년 권모(15)·최모(15)군이 대걸레로 2층 복도를 닦고 있었다. 두 학생은 지난주 호기심에 교실 내 소화기를 만졌다가 소화액을 여기저기 뿌리는 ‘사고’를 쳤다. 벌칙은 ‘청소점검표’였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과 복도를 청소하고 교사의 확인을 받아야 한다. 권군은 “장난이긴 했지만 다른 친구들 수업에 방해가 됐으니 벌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연제중은 올 1학기부터 체벌 대신 벌칙선택제를 운영하고 있다. 단계별로 벌칙을 강화하는 제도다. 교사들 사이에 체벌은 학생 지도의 대안이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때려도 말을 안 듣는 학생이 스스로 벌칙을 지키겠느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소수였다. 설문조사를 거쳐 전교생과 학부모의 동의도 얻었다.

 벌칙은 3단계로 구성돼 있다. 수업시간에 잡담을 하는 등의 잘못을 반복한 학생은 1단계로 청소나 수업점검표를 받는다. 한 주 동안 점검표에 세 번 이상 확인을 받지 못하면 벌칙이 한 주 연장된다. 1단계 벌칙을 세 번 이상 받으면 2단계인 ‘스마일 어게인’ 프로그램으로 넘어간다. 담배 꽁초 줍기, 봉사활동, 고사성어 쓰기, 체력 단련 등의 벌칙 중에서 학생이 한 가지를 선택한다. 2단계 벌칙을 두 번 이상 받으면 3단계로 ‘위(Wee)클래스’에서 심층 상담을 받는다. 3단계 이후에도 문제가 생기면 그때 선도위원회를 연다.

 재학생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한부모 가정 출신인 연제중은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위에서 평이 좋지 않았다. 학교 테니스장에서 담배를 피우다 불을 낸 학생이 있었고 학생의 교사 구타사건도 벌어졌다.

 벌칙선택제의 성과는 놀라웠다. 시행 첫 달인 3월에는 188건의 점검표가 발급됐지만 지난달에는 12건으로 줄었다. 전교생의 무단결석 일수도 지난해 총 1648일에서 올해는 418일(11월 기준)로 급감했다.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도 지난해 10명에서 올해는 3명으로 줄었다. 김영환(37) 학생부장은 “매에는 교사의 감정이 개입될 수 있고 한 번 맞으면 끝나지만 벌칙은 규정이 명문화돼 있고 일주일 내내 지켜야 해 아이들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 “벌칙으로 고생하기보다 평소 수업시간에 잘하는 게 낫다”는 공감대가 생기면서 성적도 올랐다. 올해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미달 학생은 지난해 34명에서 8명으로 줄었다. 연제중의 성과를 지켜본 주변 학교들도 벌칙선택제를 도입했거나 운영을 준비 중이다.

 2학기부터 같은 제도를 시작한 연산중 김종섭(48) 학생부장은 “석 달밖에 안 됐는데도 교사들이 ‘수업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 입을 모은다”고 말했다. 부산 동래교육지원청의 이영희 장학사는 “연제중은 체벌 없이도 학교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부산=이한길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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