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가난에 웃자란 아이, 그가 부는 ‘플루트 희망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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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십자매 기르기
최민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216쪽
9000원

소설의 배경은 으스스하다. 초등학교 6학년인 ‘나’와 중학생 형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이틀이 지난 후에야 죽음을 알아챈다. 장례를 치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엄마가 집 나간 뒤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아빠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시신과 동거한다.

 쌀은 떨어지고, 돈은 없다.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도 넉넉하진 않았다. 폐지를 줍던 할아버지는 정성껏 키우던 십자매가 죽은 뒤 정신 줄을 놓으셨으니까.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어른이 없는 건 아니다. 마음 따뜻한 도서관 사서 아줌마, 결석을 밥 먹듯 하는 형이 걱정돼 찾아온 담임 선생님이 있다. 그러나 ‘나’는 괜한 죄책감에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입을 다문다. 형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술 탓으로 돌리는데, 지난 1년간 외상 술을 사다 드린 건 바로 ‘나’였으니까.

 그러나 사고만 치는 형에 비해 제법 조숙한 ‘나’는 “진짜 남자라면 최소한 중학교는 나와야 돼”라고 한마디 할 줄 안다. “혹시 배고프냐?”고 묻는 선생님에게는 아니라고 답한다. 엄마 없이도 예의 바르게 자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아이들은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형은 돈을 벌겠다며 불법 음란 CD를 팔다 경찰에 잡히고, ‘나’는 구걸에 나선다. 하지만 곧 “누군가 나에게 동정을 베풀면 베풀수록 비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난한 아이들은 일찌감치 체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를 짓기 십상이니까.”(113쪽)

 작가가 한 문장 한 문장 어찌나 공들여 썼는지, 밑줄 그을 부분이 많다. 가령 주인 잘 만난 ‘개새끼’를 잠시 부러워하던 ‘나’는 이내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곧 그렇게 좋은 것에만 길들여진 팔자 좋은 개들이 인생을 알면 얼마나 알까 싶은 생각에 뭔지 모를 자부심마저 느꼈다.”(190쪽)

 소설은 극단적인 비극이나 엽기로 치닫지 않는다. 희망을 붙든다. 바로 소년이 할아버지에게 배운 플루트 연주다. 음악의 선율처럼 섬세하고 결이 고운 ‘나’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눈물과 미소가 함께 번진다.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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