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조광래 감독 경질 그리도 급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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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축구 국가대표팀의 조광래 감독이 8일 갑자기 해임되면서 수많은 축구팬이 의아해 하고 있다. 내년 2월 월드컵 3차 예선 마지막 경기인 쿠웨이트전을 불과 두 달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그토록 급하게 경질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발표한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지금까지의 경기력과 운영을 볼 때 조 감독 체제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는 판단을 했다고 이유를 댔다.

 물론 조 감독은 지난 8월 10일 대표팀 평가전에서 일본에 0-3으로 무너지고 지난달 15일 월드컵 3차 예선에서 세계랭킹 146위의 레바논에 1-2로 패배한 책임이 있다. 그간 독단적인 대표팀 운영으로 리더십에 문제가 있고 전술운용에 실패해 선수들의 결속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조 감독은 지난 1년5개월간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12승6무3패의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다. 그런 감독을 경질하려면 축구팬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와 대안을 동시에 내놨어야 마땅하다.

 조 감독의 경질은 과정과 절차도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표팀 감독의 선임과 해임을 다루는 기술위원회가 열리지 않고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이 기술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조 감독을 해임한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기술위원회는 회장단의 정치적인 입김을 배제하고 객관적 판단으로 감독의 선임과 해임을 결정하라고 만들어놓은 조직이다. 기술위원장은 비록 기술위원회가 현재 공석이라서 그랬다고 해명했지만 정당성을 얻으려면 새로 조직해서 판단을 물었어야 옳다.

 차기 회장 선거를 둘러싼 축구협회의 파벌 다툼이 경질을 불렀다는 추측 속에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진출 여부에 많은 이권이 걸려 있는 대형 스포츠 용품회사와 주관 방송사를 비롯한 축구 스폰서들이 경질을 부추기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이런 수많은 궁금증과 의혹에 대해 축구협회는 축구인은 물론 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해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