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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천국’ 스웨덴, 한국에는 맞지 않는 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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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수련
사회부문 기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정치권에선 복지 확대 정책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20% 인상, 소득 상위 30% 가정 0~4세 무상보육 등등.

 국민에게 혜택을 더 주겠다는 얘기니 반가워야 할 텐데, 어째 뒷맛이 개운치 않다. 돈은 누가·어떻게 댈까, 돈을 더 부으면 밑바닥까지 온기가 퍼질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본지의 ‘복지 혼란, 현장서 해법 찾다’ 시리즈도 그 연장선에서 출발했다. <본지 12월 5일자 1·4·5면, 6일자 1·4면, 8일자 22면>

 국내 복지 수준은 경제 규모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정부 사회복지 지출은 2007년 국내총생산(GDP)의 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9.3%)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돈을 더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만도 하다. 실제 출산율을 올리려면 보육을 더 지원해야 한다. 산업화의 주역이지만 정작 본인 노후는 챙기지 못한 노인들도 잘 보살펴야 도리다. 복지를 늘려야 할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명분이 있으니 무조건 늘리면 될까. 현장에선 이런 질문에 섣불리 답하기 힘든 상황이 많았다.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은 “정치권의 복지 확대에 지자체가 일일이 돈을 분담하다 보면 지역 실정에 맞는 ‘풀뿌리 복지’는 포기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서울 중랑구는 무상급식비를 마련하느라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방과후 학습 지원을 거의 없애야 했다. 노후소득 보장에 집중해야 할 국민연금공단이 장애인 복지와 기초수급자 근로능력 판정업무를 떠맡는 등 지원 체계도 엉성했다.

 이런 혼란은 국회·정부가 한국형 복지모델의 밑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않아 생긴 일이다. 야당들은 복지를 늘리는 데만 올인한다. 여당도 경쟁하듯이 이것저것 내놓고 있다. 정부는 “균형재정”을 외치지만 이 흐름을 돌리지는 못하고 있다.

 내년엔 총선과 대선이 기다린다. 경쟁적으로 복지를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더 이상 ‘복지 천국’ 스웨덴을 거론하지는 말아달라. 우리한텐 맞지 않는 옷이다. 스웨덴은 우리보다 세금을 훨씬 많이 낸다. 정치권은 단발성 선거용 복지 대신 재원을 어디서 확보하고 효율성은 어떻게 높일지를 담은 ‘복지 청사진’을 공약으로 걸어야 한다. 그걸로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게 맞다.

박수련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