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내분부터 정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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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무력화하기 위해 장외투쟁을 하던 민주당이 한나라당과의 협상에서 임시국회를 12일부터 연다는 데 합의했다. 9일로 회기가 끝나는 정기국회가 많은 숙제를 남기게 된 만큼 민주당이 국회 정상화에 동의한 건 잘한 일이다. 이젠 임시국회를 차질 없이 진행해 내년도 예산안과 한·미 FTA 피해보전 대책법안 등 산적한 민생 현안을 처리하는 데 민주당이 앞장서주길 기대한다. FTA와 관련해 무리한 요구로 의사일정을 지연하는 등 갈 길이 바쁜 국회의 발목을 잡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도 내지 못한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새로운 상(像)을 보여줘야 한다. 국회로 복귀해 민생을 제대로 챙기는 진정성 있는 활동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당내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야권 통합을 둘러싸고 겪고 있는 극심한 내홍(內訌)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민주당은 임시국회에 앞서 11일 전당대회를 연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이 주축인 ‘혁신과 통합(이하 혁통)’, 그리고 한국노총 등과 통합하는 문제에 대해 대의원들의 뜻을 묻는 자리다. 그런데 이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통합신당의 지도부 선출과 관련한 당내 갈등이 심해지면서 분위기가 흉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 열린 지역위원장 회의에서도 고성(高聲)과 삿대질, 멱살잡이, 주먹다짐 등 꼴불견이 여러 번 노출됐다.

 손학규 대표 등 통합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측은 그간 협상과정에서 ‘혁통’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통합신당의 지도부는 당원이 선출해야 한다”는 박지원 전 원내대표 측의 ‘당원 주권론’을 ‘혁통’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자 지도부 선출권을 가진 선거인단을 ‘대의원 30%, 당원·시민 70%’로 정했다. 그러자 박 전 원내대표는 “손 대표가 지도부 선출방식과 관련해 사전에 합의하겠다고 해놓고 아무런 상의도 하지 않은 채 ‘혁통’ 측과 밀실에서 마음대로 정했다”며 반발했다. 그러면서 손 대표 측이 밀어붙이는 통합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손 대표와 결별한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양측이 타협하지 않는 한 전당대회에서 통합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통합안을 반대하는 측이 물리력으로 표결을 저지하려 할 경우 충돌이 일어나 전당대회가 난장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박 전 원내대표가 8일 “민주당 깃발을 내리는 데 반대하는 많은 대의원과 원외 지역위원장, 국회의원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제가 조정할 능력이 없다”고 한 건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질 경우 ‘내 책임이 아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다.

 전당대회가 엉망진창이 될 경우를 상상해보라. 국민이 민주당을 신뢰하겠는가. 수권능력을 인정하겠는가.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도 생사(生死)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손 대표와 박 전 원내대표는 극적 정치력을 발휘해 당도 살리고, 자신들도 사는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