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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좋고 값싸고 정도 듬뿍 … 우린 전통시장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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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과학기술대 학생들이 지난달 29일 진주 중앙유등시장을 찾아 이 시장 대표품목인 한복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송봉근 기자]

# 한국전기안전공사 유주현(34) 홍보실 대리는 요즘 집(서울 강동구 길동) 근처 전통시장인 암사종합시장에서 장을 본다. 지난 추석 때 받은 회사보너스 가운데 10만원을 온누리상품권으로 받은 게 계기였다.

 “명절 전날 사과와 배를 두 박스씩 샀는데 정말 신선하고 값도 싸요. 그날 이후 마트 대신 이곳에 가지요. 덤으로 얹어주는 정감이 있어서 더 좋아요.” 남편과 함께 세 살, 한 살 난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안고 가는 경우도 잦다. 부산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를 아이들도 무척 재미있어 해서다.

 공사는 지난 9월 추석을 앞두고 본사와 전국 60개 지사 임직원 2700여명에게 모두 3억원 어치의 상품권을 지급했다. 지난 7월 맺은 ‘1기관 1시장’ 결연의 취지를 살리려고 보너스의 일부를 지역 전통시장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온누리상품권으로 준 것이다. 박철곤 사장은 “직원들의 반응이 좋아 흐뭇했다”면서 “저 역시도 저녁 찬거리도 사면서 전통시장을 자주 이용하게 됐지요”라고 말했다.

 공사 측은 추석 연휴 전 일주일(9월 2~9일) 동안 지역 전통시장의 전기시설 무료 점검도 해줬다. 본사 14명을 포함해 지사별로 5~10명씩 팀을 이뤄 결연을 맺은 전통시장에 나가 노후된 전기설비를 체크하고, 안전 교육도 했다.

# 충절의 상징 논개의 고장 진주에는 127년 역사의 전통시장이 있다. 진주 중앙유등시장이다. 이곳 상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진주 중앙유등시장 이야기(가제)』이 올 연말 출간된다. 책의 기획은 시장 상인회, 저자는 경남과학기술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스토리텔러(Story teller) 봉사자들이다.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으로 상인회 사무실을 찾아갔다가 참여하게 됐어요.” 지난달 10일부터 열흘간 한복매장인 명신주단에서 봉사를 한 정다정(20·여·전자상거래 무역학과 2)씨는 하루 네 시간씩 상인체험을 하면서 전통시장과 상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한복에 대한 깊은 애정과 전문지식으로 고객과 상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큰 신뢰가 생겼어요.”

 정씨를 포함한 3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35개의 상점과 1대1 결연을 맺고 상인체험을 하면서 이야기들을 발굴 했다. 김동규(23·기계공학과 3)씨는 “시장은 단순히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며 “시장에서 느끼는 매력을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학생들의 봉사활동 소식에 학교측도 움직였다. 지난 30일 경남과학기술대가 중앙유등시장과 ‘1기관 1시장’ 자매결연을 맺은 것이다. 학교측은 시장 경영개선을 위한 자문상담과 전문 마케팅을 지원할 예정이다. 전진생(49) 상인회장은 “교수와 교직원 차원의 전문적인 멘토링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반겼다.

중소기업청이 지난 7월부터 시작한 ‘1기관 1시장’ 캠페인이 많은 사연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값도 깎고 덤도 받으며 장을 보는 재미, 거기에 ‘대형마트에 밀려나는 전통시장을 살리자’는 마음까지 더해져 공감이 크다.

한 기관(기업·학교)이 지역의 전통시장과 결연을 맺어 도움을 주고, 매달 1회 ‘전통시장 가는 날’을 정해 운영하자는 것이 캠페인의 골자다.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시작으로 11월말 현재 시장과 결연을 맺은 곳은 433곳쯤 된다. 그 중에는 200개의 민간기업과 61개의 대학도 포함돼 있다. 이들이 전국의 전통시장 1517개중 절반이 넘는 872곳과 결연을 맺었다. 서울의 남대문·영천·광장시장부터 강원도 태백시의 황지자유시장, 제주도의 한림민속오일시장까지. 1대 1 결연도 있고, 시장 한 곳과 여러 기관이 동시에 결연을 맺은 경우도 있다.

참여 기관들은 특별한 날 온누리상품권을 구매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필요한 물품을 지정구매하기도 한다. 또 한국전기안전공사처럼 기관·기업의 특성을 살려 상인들에게 전문적인 봉사를 하는 곳도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8월 서울시 종로구 통인시장과 결연을 맺은 뒤 민간 무료급식봉사단체인 나눔의 둥지에 보내줄 식자재를 세 차례 구매했고, 통인시장 상인들에게 고객용 장바구니 300개를 제공했다. 또 ‘전통시장 가는 날’로 지정한 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시장을 찾은 직원들에게 온누리상품권을 줘 격려한다. 통인시장 상인회 심계순(37·여)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우리 상인들이 매출이 늘어나는 것을 체감할 수 있도록 직원분들이 꾸준히 찾아주셔서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이 지난달 ‘1기관 1시장’ 결연을 맺은 전통시장 1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결연이 활성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곳이 62%였다. 특히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고객숫자가 9.2% 늘어났고, 이에 따라 매출도 8.6%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청 김대희 시장상권과장은 “지역 기관과 민간기업의 호응이 좋아 내년에는 전통 시장 가는 날이 전국민적인 캠페인으로 퍼지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이예지 행복동행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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