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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와 나 ⑦ 낮엔 농사 밤엔 공부 ‘주경야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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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장재영 군수(노란 점퍼 입은 사람) 등 한우대학 수강생들이 전북 장수군의 한우 유전자뱅크 축사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있다. 한우대학은 주경야독의 농민·직장인을 위한 배움터다. [장수=프리랜서 오종찬]

고급 한우로 유명한 전북 장수군의 박영섭(42)씨는 매주 목·금요일 밤이면 ‘한우대학’에 나간다. 오후 7시부터 3시간 동안 축산경영·한우 번식·사료 등을 공부한다. 때로 주변에서 “모임에 빠져 서운하다”는 소리를 듣고, 졸음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최고의 축산농이 되겠다”는 의지로 극복한다. 현재 농장에서 키우는 한우 20여 두를 10년 내 500여 두로 늘리는 꿈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축산기사, 한우수정사 등 자격증 시험에도 도전할 마음을 먹고 있다.

 농촌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 바람이 불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특화산업을 이끌고 나갈 리더를 키우기 위해 농민대학을 잇따라 개설하면서 농민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학비도 절반을 지원한다. 농민들은 체계적 영농 지식과 신기술을 습득해 시장 개방의 파고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전북 장수군은 2007년 ‘한우대학(4년 과정)’을 설립했다. 장수는 전체 농가 소득의 40~50%를 축산에서 올리는 ‘한우의 고장’이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한경대학 교수들이 내려와 농민과 공무원·직장인 등에게 축산 지식과 신기술을 가르친다. 2008년부터 한우대학을 다닌 박씨는 “앞으로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로 농업의 문호가 활짝 열리는데 옛날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소를 키우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최상급인 A++의 소를 만드는 관리요령, 송아지 사육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부인·아들이 소 200여 마리를 키우는 장재영 군수도 매주 이틀 밤씩 나와 공부했다. 장 군수는 “고기 맛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일본의 와규(和牛)를 뛰어넘는 한우의 메카를 육성하기 위해 대학을 개설했다. 이를 통해 5·3프로젝트(5000만원 이상 고소득 농가 3000가구 육성)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고추장’의 고장인 순창군은 전북대와 손잡고 야간 ‘장류대학’을 운영 중이다. 고추장·된장 등 전통 장류를 글로벌 식품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게 목표다.

 장류대학은 순창읍 백산리 고추장 민속마을에 강의실을 마련해 월~목요일 밤에 2~4시간씩 수업한다. 100명의 수강생 가운데 여성이 60%를 차지한다. 사이버 교육을 이수해 학점(140학점)을 따면 전북대에서 평생교육원 학사 학위도 준다. 30여 년간 고추장을 담가온 박현순(55·여)씨는 “미생물 발효 등에 대한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며 “몸이 좋지 않아 입원했을 때를 빼고는 단 하루도 결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창군도 농민 200여 명을 대상으로 10개월 과정의 복분자 농업대학을 운영한다. 2006년 귀농한 박재숙(43·여·고창군)씨는 이곳에서 공부한 뒤 영농법인 ‘베리팜’을 설립했다. 박씨는 “생전 처음 흙을 만진 초보 농부가 3년 만에 연 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며 “이론과 실습으로 무장한다면 어떤 외국산 농산물도 물리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장수=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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