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안 서는 대법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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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법관의 정치적 의견 표명 관련 논란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1일 김하늘(43·사법연수원 22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불평등조약일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판사 100여 명이 이에 공감하는 댓글을 닮에 따라 양승태 대법원장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김 부장판사의 글은 처음 논란을 촉발시킨 최은배(45) 인천지법 부장판사 등의 페이스북 글과는 성격이 다르다. 최 부장판사 등이 단편적인 견해를 밝힌 것이라면 김 부장판사는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면서 대법원장에게 ‘한·미 FTA 재협상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T) 구성’을 청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간접 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등 다섯 가지를 근거로 든 뒤 “협정이 사법주권을 명백하게 침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장에 앞서 “나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차라리 얼굴마담이 낫겠지’ 하는 생각에 나경원 후보에게 투표했다”며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는 관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김 부장판사의 입장 표명은 사법부 내부의 갈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양 대법원장은 판사들의 정치적 의견 표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최근 최 부장판사 문제를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토록 했다. 이어 이날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는 “개인적 소신을 법관의 양심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고 제시했다. 지난달 25일 “법관은 모든 언동과 처신에서 자제하고 성찰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한 것보다 경고의 수위를 높인 것이다.

 김 부장판사의 글에 대한 판사들의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일선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행정부 업무에 사법부가 끼어들어 한·미 FTA 재협상 TF팀을 만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반면 또 다른 판사는 “김 부장판사 자신이 순수한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날 김 부장판사 의견에 동조하는 법관의 숫자가 1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실제 청원문이 제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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