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 걷힌다 해도 마음의 38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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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피에 적혀있는 저자의 약력은 이 책의 성격을 아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된다.

1985년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96년부터 연세대 의대 정신과 및 의학교육학과 조교수로 활동 중. 〈북한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 적응에 관한 연구〉〈탈북자들의 삶〉(단행본) 등 탈북자와 관련한 적잖은 논문과 단행본 목록이 눈에 들어 온다.

이 책은 수많은 통일 관련 연구서 중 한마디로 좀 '특이' 하다.

기존의 연구들이 정치.경제.군사.외교 등에 집중해 온 반면, 이 책은 저자의 전공분야를 탈북자와 연계시킨 '남.북한 사람들의 통합을 위한 사회정신의학적 고찰' (부제)이다.

저자는 일련의 탈북자 문제에 매달리게 된 동기를 서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는 처음 그렇게 만났다. 94년 12월 어느 추운날 오후, 서울교대 전철역 근처 지하식당이었다. 우리는 같은 61년생이었다."

'그' 는 저자가 만난 최초의 '북한출신 사람' 이었는데, 서로 적개심과 경계심을 감추지 못하는 냉전적 교육에 충격을 받았다.

이 때 저자는 땅이 통일 된다 해도 '사람의 통일' 을 이루지 못하면 사상누각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고 한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졌다. 난민에 관한 외국의 연구사례에 탈북자들의 예를 대비시킨 〈이론적 고찰〉(제1부)에 이어 독일 통일 이후 심리적 극복 방안 등을 다룬 〈외국의 사례 현장 연구〉(제2부)와 〈사람의 통일을 위한 제언〉(제3부)으로 꾸며졌다.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이론적 근거들을 많이 제시해 건조한 느낌이 앞서지만, 적절하게 탈북자들의 사회 부적응 문제와 대안들을 섞어 현실감을 높인 점은 시대적 요구을 잘 읽어낸 감이 든다.

저자는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두개의 문화가 서로 영향을 받아 둘다 변화하는 것을 뜻하는 '문화적 변용' 의 과정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남한에 들어와 사는 것은 남한 문화의 수용 과정인 동시에 남한의 북한 문화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땅의 통일' 이후 '사람의 통일' 을 위해 시급히 해야할 일로 이질감의 극복을 든다.

심리적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땅의 통일마저 위험해 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 극복방안으로 남북 경협과 대중매체 등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 등을 제언했다.

통일시대를 향한 각계의 다양한 연구 또한 사람의 통일을 이루는 필요충분조건임을 감안할 때 이 분야의 좋은 모델이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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