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이번엔 ‘무이자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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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사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 15일 1500억원대의 주식을 내놓기로 발표하면서 기자들과 만난 시간은 꼭 2분. 남긴 말은 두 마디였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걸 실행에 옮긴 것뿐이다. 그간 사회에 대한 책임, 사회 공헌을 많이 말했는데 그걸 행동으로 옮긴 거다.”

 그러곤 그는 함구했다. 극도로 행동을 절제하는 모습이었다. 자연히 1500억원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안 원장의 한 지인은 29일 1500억원의 기부 방식과 관련해 “정치인들의 기존 기부 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성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기부금 운용은 초저금리 혹은 무이자로 돈을 빌려줬다가 상환받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학생들에게 장학금 등 을 몇 차례 나눠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부의 초점을 ‘자활’에 맞추겠다는 게 안 원장의 뜻”이라는 얘기다.

자활에 초점을 맞출 경우 안 원장의 기부금 운영은 빈곤계층에 무담보로 소액을 대출해 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로 크레디트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방글라데시에 설립된 ‘그라민(Grammeen)은행’이 있다.

지인의 설명과 그라민 모델을 적용하면 안 원장의 기부금 1500억원은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무이자나 거의 제로금리로 학자금을 대출해 주는 데 쓰이게 될 듯하다.

 안 원장은 또한 주식을 아름다운 재단 같은 단체에 기부하지 않고 직접 복지재단을 설립하되 재단형태는 ‘성실공익법인’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성실공익법인이란 형태는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재단’(이사장 송정호)과는 차별화된 형태다. 이 대통령의 재산헌납으로 탄생한 청계재단은 성실공익법인이 아닌 ‘공익법인’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 중 주식 배당금 같은 운용소득을 원래 목적에 80% 이상 사용하고, 이사 자리에 특수관계인을 5분의 1 이하로 쓰면 ‘성실공익법인’으로 인정받는다.

  청계재단은 이 대통령의 사위 및 지인이 이사진에 포함돼 논란이 있었다. 안 원장은 재단이사장이나 이사 자리에 특수관계인을 5분의 1 이하로 임명할 수밖에 없다. 지인이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기부방식도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주식을 기부해 증여세를 내야 하는 안 원장으로선 세금 부담을 덜고 기부액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성실공익법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이 법인은 당국의 관리감독을 더 철저하게 받되 주식을 기부할 때 비과세 범위가 두 배로 늘어난다.

 지난 15일의 ‘절제된 기부’ 발표 이후 고공행진하던 그의 지지율은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래서 기존 정치권과는 차별화되고 한 차원 진화한 그의 구체적인 기부 방식이 드러나면 또 한번 지지율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안 원장은 정치권이 ‘안철수 신당론’으로 어수선한 가운데에서도 돈을 어떻게 쓸까 하는 문제에 골몰해 왔다고 한다. 이런 그에 대해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치할 생각 쪽으로 많이 기우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원보 기자

◆그라민 은행=방글라데시 경제학자인 무함마드 유누스 박사가 1976년 시작한 서민 전용 은행. 당초 빌려준 돈을 많이 떼일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회수율이 99%에 달했다. 유누스 박사는 빈곤퇴치에 기여한 공로로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現]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CLO)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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