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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세종이 관노 출신 장영실 중용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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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최근 톡톡 튀는 이색적인 방법으로 인재를 채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한 백화점은 TV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신입직원을 선발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존을 만들어 입사 지원자의 긴장을 풀어주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채용과정에서 맥주파티를 하는 기업도 있다. 지원자가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한편 기업으로서는 자신의 기업문화에 맞는 인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이다.

 일본에는 독특하다 못해 시트콤에나 나올 법한 엽기적인 방법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기업이 있다. 한 컴퓨터 부품 회사는 목소리가 큰 사람을 뽑는다.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감이 있고 실수했을 때 반성이 빠르다는 이유에서다. 또 오징어와 같이 씹기 어려운 음식을 차려놓고 밥을 빨리 먹는 사람을 뽑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빠릿빠릿하며 일처리가 똑 부러진다는 것이다. 화장실 청소를 시키기도 했는데 남들이 싫어하는 일도 서슴없이 하는 열정을 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별난 채용방법의 결과는 좋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발된 인재들이 컴퓨터 하드웨어용 모터 부문에서 이 회사를 세계 1위에 올려놓았다.

 ‘채용이 곧 전부다’라는 말이 있다. 제대로 된 인재가 회사에 들어오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 하지만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인재를 제대로 알아보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면접을 볼 때 관상가까지 동원하는 기업이 있겠는가. 이 때문에 지원자가 자신을 나타낼 말과 행동을 제한된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이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별난 채용방법이 속속 생겨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다양한 채용방법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구태의연한 채용기준을 버리지 못하는 기업이 여전히 많아 안타깝다. 얼마 전 한 취업포털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서류전형을 할 때 출신 대학을 고려하는 기업이 43%나 되었다고 한다. 상위권 대학과 하위권 대학 출신을 달리 취급하는 기업도 41%였다. 좋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일을 잘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라고 한다.

 지원자의 역량과 자질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학벌만 보면 엉뚱한 사람을 뽑을 수 있다. 이렇게 한번 잘못 뽑은 직원은 직장의 동료, 상사는 물론 고객에게까지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게 된다. 기업 전체가 멍들게 되는 것이다. 사과상자 안에 썩은 사과 하나만 있어도 나머지가 쉽게 썩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일단 채용한 직원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해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 노동법이 정규직의 고용을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이 처음부터 옥석을 정확하게 가려 직원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지원자 중 우수한 사람을 뽑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근 드라마를 통해 똥지게까지 져가며 성군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세종대왕이 참고가 될 듯하다. 세종은 인사의 달인이었다. 그는 신분의 귀천이나 문벌의 우열을 따지지 않았다. 심지어 과거의 행적도 묻지 않고 역량 있는 인재를 구했다. 황희는 서얼 출신에다 과거 세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까지 한 인물이지만 세종이 가장 신임하는 재상이 되어 18년이나 영의정으로 재임했다. 장영실은 중국계 귀화인의 후손이자 관노 출신이었지만 중용되어 조선의 과학기술 수준을 높였다. 최윤덕은 무관이었지만 국방에서 뛰어난 업적을 인정받아 재상에까지 등용되었다.

 세종은 당시 많은 선비가 내실을 기하기보다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겸손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가 될 것을 요구했다. 화려한 스펙 쌓기와 같은 겉치레에만 치중하고 인성을 갖추지 못한 자를 경계한 것이다. 또 과거시험만으로는 적합한 인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관료들에게 인재를 천거토록 했다. 채용의 길을 다양화해 숨은 인재를 발굴한 것이다.

 간택(揀擇)·평론(評論)·중의(衆議)로 이어지는 3단계의 인사시스템도 구축했다. 간택 단계에서는 공직후보자의 경력과 자질, 부패혐의 등을 철저히 살폈다. 이어 평론 단계에서는 내부 관원들의 평가를 종합 정리했고, 마지막으로 중의 단계에서 오늘날의 인사청문회를 열어 여론을 들어보고 나서야 인재를 등용했다. 찬란한 세종 시대는 이렇게 선발된 인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기업의 성장과 쇠퇴는 결국 기업 내부의 인재에 의해 결정된다. 기업은 학벌이나 스펙이 아니라 능력과 인성·열정을 잘 살펴 인재를 채용해야 한다. 세종이 등용했던 수많은 인재에 의해 당시 조선이 문화를 꽃피우고 태평성대를 구가했듯이, 그런 인재채용이야말로 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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