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로존 위기 상황, 1차 대전 후와 비슷하게 진행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6호 20면

평화의 경제적 귀결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1919년에 쓴 책이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연합국들이 전후 배상금 문제를 논의했다. 영국 재무부 대표의 일원으로 강화회의에 참석한 케인스는 연합국이 주장하는 배상금 규모는 독일 경제를 피폐하게 해서 다시금 전쟁을 불러일으키고 결국 유럽을 파멸에 빠뜨릴 것이라고 보았다. 케인스는 독일에 배상금을 물리지 않든가, 물리더라도 2억 파운드 이하에서 그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수용되지 않는 가운데 건강이 나빠진 케인스는 영국으로 돌아와 이 책을 썼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그 뒤의 전개과정은 역사가 말해준다. 독일은 수레에 돈을 싣고 다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나치가 집권하면서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는 다시 독일의 공격을 받는다. 이때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 2차 대전 승전국들의 마셜 플랜(Marshall Plan)이다. 패전국의 전후 복구에 중점을 두는 계획을 짜게 된 것이다.

영국의 1차 대전 동원병력 중 90만 명이 죽고 200만 명이 다쳤다. 그런데도 자비를 베풀자는 케인스의 용기와 선견지명이 놀랍다. 이러한 케인스의 관점은 최근의 유럽사태에서 제시되는 관점과 여러 가지로 대비된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관점을 과거가 아닌 미래에 두는 것이다. 즉 과거에 발생한 것은 매몰비용(sunk cost)으로 간주하고 미래의 부흥에 관점을 두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유럽사태 전개는 과거지향적인 면이 많이 있다.

유럽 통화통합의 좌장 격인 독일은 유로화 단일통화체제로 많은 이득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 방만과 게으름에 메스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리 자체도 사실 맞지 않지만, 과거지향적인 관점 자체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케인스는 유럽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독일에 전쟁 배상금을 물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지금 유럽에 적용하면 남유럽의 재정적 방만과 소비지출로 인해 발생했던 것은 일정 부분 매몰비용으로 생각하고 미래에 유럽 국가들이 모두 부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과도한 긴축을 통한 균형의 회복이 아니라 유효수요의 극단적 감소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남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는 긴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는 근검절약만으로 위기에서 절대 탈출하지 못한다. 통화통합으로 환율도 묶여 있고 금리는 치솟고 게다가 재정까지 긴축한다는 것은 수요의 세 가지 통로(해외, 재정, 통화)를 모두 차단하는 것이다. 이는 문제가 되고 있는 다른 남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통화증가율까지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재정, 금융, 대외부문 모두 긴축을 하는 셈이다. 게다가 유럽중앙은행(ECB)은 최종 대부자로서 국채 매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마지막 퇴로마저 막는 격이다.

ECB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일은 “부채문제를 통화를 풀어서 대응하면 초인플레이션이 온다”는 원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상대국의 내핍을 강조하기보다는 유효수요의 대폭적인 감소를 막는 보다 실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케인스는 유럽의 질서는 취약한 기초 위에 서 있고 생각처럼 탄탄하지 않다고 보았다. 이는 충격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1, 2차 대전을 겪고 다시는 이런 홍역을 치르지 않기 위해 유럽연합(EU)을 만들고 통화통합까지 했지만 지금도 유럽은 그 기초가 탄탄하지 않은 것이 여전하다. 문화적인 이질성에 경제적 이해관계의 차이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그 기초를 강화할 수 있는 유로본드 발행도 독일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방안도 1단계로 재정감독 강화를 우선하고 2단계로 유로본드 발행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진다.

유럽사태의 진행은 1919년 이후의 유럽과 비슷할 것이다. 1차 대전 후 영국과 프랑스 등은 독일에 전비 배상을 강하게 요구하고 이후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5000만 명이 사망한다. 2차 대전 후, 승전국은 패전국에 대한 보복보다는 마셜 플랜 등을 통해 유럽을 재건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유럽사태 역시 과거지향적이고 원론적인 정책이 전개되고 난 후, 이것의 부정적 효과가 중심부에까지 피해를 주게 될 때야 비로소 관대함과 미래지향적인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김경록(49) 2000~2009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채권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와 채권·금융공학부문 대표를 거쳤다. 올해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김경록(49) 2000~2009년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채권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와 채권·금융공학부문 대표를 거쳤다. 올해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를 맡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