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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브로드웨이 아시아계 배우들의 대부,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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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헨리 황(黃哲倫·54). 뉴욕 아시아계 연극인들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던 작가가 올가을 브로드웨이에 컴백했다. 1988년 ‘M. 버터플라이’로 토니상을 거머쥔 최초의 아시안아메리칸 작가. 그는 아시안아메리칸 배우들의 대부였다.

 데이비드 헨리 황은 오프-브로드웨이인 퍼블릭시어터에서 자전적 연극 ‘옐로 페이스’를 올렸고, 뮤지컬 ‘아이다’에서 작곡가 엘턴 존과 콤비로 작사를 하기도 했다. 또 독일에서 한인 작곡가 진은숙씨와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가사까지 쓰며 다양한 장르로 저변을 넓혀왔다. 그리고 고향인 브로드웨이로 돌아온 것이다.

 브로드웨이 아시안 연극인들의 등대인 그가 중국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칭글리시(Chinglish)’로 브로드웨이에 도전장을 냈다. 출연진 대부분이 중국계이자 자막까지 등장하는 ‘칭글리시’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박숙희 뉴욕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오역투성이의 중국 간판이 영감

 클리블랜드의 간판 사업가 대니얼(게리 윌미스 분)이 중국의 개발도시 귀양에 간다. 오역투성이인 간판을 바꾸려고 지역 문화국장을 면담하지만, 통역조차 엉망이다. 미모의 부국장 시얀(제니퍼 림)과 사랑에 빠진 대니얼이 엔론 출신임이 알려지며, 사업엔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칭글리시’는 어떻게 쓰게 됐나.

 “2005년 우리 연극의 문화자문인 조애너 리와 켄 스미스가 나를 상하이의 최신 문화센터로 데려갔다. 그곳은 오역된 간판만 빼곤 모두 아름다웠다. 그 간판들을 보면서 중국의 언어문제에 부딪히는 한 사업가에 관한 연극이 떠올랐다.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위엄으로 생각하는 중국인 등장인물들이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희곡을 쓰게 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나 교육받았다. 중국 표준어 ‘만다린’을 하나.

 “내 만다린은 형편없다! 대학 때 2년 만다린을 공부했고, 때론 개인교습도 받았다. 그런데도 난 통역자(캔디스 무이 감 청) 없이는 이 희곡을 결코 쓰지 못했을 것이다.”

●발견한 칭글리시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나.

 “우리 제작팀은 2010년 귀양에 리서치하러 갔다. 지역의 공무원이 우리를 위해 연회를 열어주었는데, 메뉴에 ‘나무개구리의 나팔관 튜브(Wood frog fallopian tube)’라는 것이 있었다. 연출가 리 실버먼은 그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버섯요리의 일종이었다.(웃음)”

●아시아계 배우로서 브로드웨이에서 활동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난 작가로 활동해 오면서 늘 아시안아메리칸 배우들과 일해왔다. ‘칭글리시’를 준비할 때는 만다린에 정통한 배우들을 찾는 일이 어려웠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았다. 우린 지금 공연에 출연하는 훌륭한 배우들뿐만 아니라 좋은 후보자들을 많이 만나봤다.”

●어머니가 한인인 배우 제니퍼 림은 어떻게 찾아냈나.

 “제니퍼는 페이스북의 상호친구인 연출가 메이 아드랄레스를 통해 이 작품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제니퍼는 우리가 제1막을 겨우 끝냈을 때인 첫 번째 리딩에 참가했다. 제니퍼는 경험이 그다지 많은 배우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 역에 맞는 다른 여배우들을 열심히 물색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결국엔 늘 제니퍼에게 돌아왔다. 제니퍼는 우리가 시얀 역에서 원했던 온화함, 성적인 매력과 유머는 물론 사나움과 강인함도 갖추고 있었다.”

브로드웨이는 흥행이 생사 좌우

 “별 네 개! 데이비드 헨리 황의 유쾌한 칭글리시, 중국의 호랑이가 포효하고, 미국인 사업가는 휘청거린다. 웃음과 성적인 쾌락의 번역. 기민하고, 시의적이며, 날카로운 코미디. M. 버터플라이 이후 황의 최고작.”(시카고 트리뷴)

 “신선하고, 에너지 넘치며, 브로드웨이의 어떤 작품과도 다른 독특한 작품. 칭글리시는 사려 깊고, 재밌고, 통렬하면서도 기적적으로 번역에서 의미를 잃지 않고 있다”(AP)

 ‘칭글리시’는 올여름 시카고의 골드먼시어터에서 초연되어 완전 매진에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10월 27일 브로드웨이의 롱에이커시어터(1096석)에서 공식 개막됐다.

 롱런뮤지컬 ‘라이언킹’이나 ‘위키드’, 토니상을 휩쓴 뮤지컬 ‘북 오브 몰몬’과 휴 잭맨의 원맨쇼 ‘휴 잭맨: 백 온 브로드웨이’처럼 주당 100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지는 않지만, 주당 약 37만 달러의 흥행성적으로 연극으로서는 순조로운 항해를 하고 있다.

●시카고에서 초연했는데.

 “우린 언제나 뉴욕 바깥에서 먼저 공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대본과 제작을 수정할 두 번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를 택한 이유는 내가 한번도 새 연극을 초연한 곳이 없는 매우 중요한 ‘연극도시’이기 때문이다.”

●연출자는 중국계가 아니라 미국인 리 실버먼인데.

 “리는 무척 재능 있고, 세심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연출자다. 리와 나는 전작 ‘옐로 페이스’에서도 함께 일했는데 호흡이 척척 맞았다.”

●흥행성적과 리뷰, 그리고 관객의 반응은 얼마나 중요한가.

 “아티스트는 자기 자신을 위해 작품을 만든다. 때로는 운이 좋아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준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은 흥행성적에 따라 살고 죽는다. 이제까지 우리의 성적은 충분히 좋은 편이다. 흥행의 경우 처음엔 관객들이 리뷰에 따라 움직이지만, 몇 주가 지나면 입소문이 좌우한다.”

아시안을 위한 아시안의 연극

●브로드웨이의 리바이벌 뮤지컬 ‘플라워드럼송’(2002)은 모두 아시아 출연진으로 구성됐다. 그때 각색을 담당했는데.

 “비아시안뿐만 아니라 아시안아메리칸들을 위한 새로운 버전을 만들었다고 느낀다. 그리고 ‘플라워드럼송’이 미 전역에서 공연되어 온 것에 감사할 뿐이다. 난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아시안아메리칸에 관한 유일한 뮤지컬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M. 버터플라이’에서 ‘플라워드럼송’, 그리고 ‘칭글리시’까지 브로드웨이의 아시안아메리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

 “가장 큰 차이점은 지금 브로드웨이급의 아시안아메리칸 배우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갈수록 늘고 있다. 배우들의 수준도 높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현재 오프-브로드웨이에선 이영진, 줄리아 조, 다이애나 손 등 한국계 희곡작가들이 활동 중이다. 그들의 작품을 어떻게 보나.

 “세 명의 작품은 물론 더 젊고 훌륭한 아시아와 아시아태평양계(APA·Asian/Asian Pacific American) 희곡작가들의 작품을 즐겼다. 사실 지금은 새 APA 연극계의 놀라운 시기다. 지금 활동 중인 재능 있는 작가들이 무척 많다.”

아시안 배우는 많아도, 배역은 소수

●‘칭글리시’뿐 아니라 20일 공식 개막되는 새 연극 ‘세미나’엔 한인 배우 헤티엔 박이 있고, 토니상 최우수 리바이벌뮤지컬상 수상작인 ‘애니싱 고우즈’에도 레이먼드 이와 앤드루 카오 등 아시안 배우들이 나온다. 이제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 아시아계 배우의 수가 충분하다고 보는가.

 “재능 있는 배우들이 무척 많지만, 역할은 충분치 않다. 제작자·연출자와 작가들은 배역의 민족성이 특별히 지정되지 않는 한 아시안아메리칸 배우를 캐스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바바리안스테이트오페라의 신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선 한인 작곡가 진은숙씨와도 일했는데.

 “정말 즐거운 작업이었다. 은숙씨는 독특하고도 타협하지 않는 비전을 갖춘 헌신적인 아티스트다.”

●미국 공연 계획은.

 “내년 세인트루이스 오페라에서 미국 내 초연될 예정이다.”

●글쓰기의 영감은 어디서 오나.

 “글을 쓰는 일은 내가 주제에 대해 아주 깊은 곳에서 진짜로 어떻게 느꼈는가를 탐험할 기회를 준다. 글쓰기는 궁극적으로 자기 탐험의 여정이다.”

What Matters Most?

●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 경험을 할 수 있는 한 풍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지구상에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데이비드 헨리 황

1957년 LA에서 상하이 출신 은행원과 피아니스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대학을 거쳐 예일대 연극과에서 수학했다. 1988년 프랑스 외교관과 베이징 오페라 배우의 사랑을 그린 ‘M. 버터플라이’가 유진오닐시어터에 올려져 토니상 최우수 연극상을 수상했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중국 가족 이야기를 그린 리바이벌 ‘플라워드럼송’을 개작했으며, 2007년 ‘미스 사이공’의 캐스팅을 비꼰 자전적 연극 ‘옐로 페이스’를 퍼블릭시어터에 올렸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이다’와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가사를 썼다. 이외에도 영화, TV 등 다양한 장르에서 일했다. 올 10월 롱에이커시어터에서 개막된 ‘칭글리시’에 이어 현재 이소룡의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브루스 리: 서부로의 여정(Bruce Lee: Journey to the West)’을 집필 중이다. ‘M. 버터플라이’에서 대역을 맡았던 배우 캐슬린 레잉과 결혼해 두 자녀를 두었다. 이들은 케빈 클라인과 피비 케이츠 부부가 살았던 맨해튼 링컨센터 인근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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