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달콤하지만 감질나는, 뒤틀린 여성 욕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첫 장편 『롤리팝과 책들의 정원』을 낸 소설가 박주현씨. 닮았으면서도 어긋나게 마련인 어머니와 딸의 애증 관계를 과감하게 그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스물아홉의 미혼 여성 이현. 그의 삶은 통념에서 벗어난다. 우선 아버지뻘 나이의 유명 사진작가가 애인이다. 하룻밤 ‘사고’로 시작된 둘의 관계는 애정과 배려보다 정열과 애증으로 묶인 관계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지독한 간섭에 시달린 그는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는 섭식장애로 고통 받는다. 무엇보다 포르노그라피 소설을 쓴다. 사람의 말을 하는 여성 성기가 등장해 여성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박주현(33)의 장편 데뷔작 『롤리팝과 책들의 정원』(문예중앙)은 이처럼 뒤틀리고 전도된 여성의 욕망,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갈증으로 들끓는다. 서울예대 문창과를 마친 뒤 덕성여대 스페인어학과를 더 다녀 ‘뜸 들이는’ 기간이 길었던 박씨는 문제작이라면 문제작을 첫 책으로 내놓았다.

 막대사탕, 롤리팝은 먹어도 먹어도 만족스럽지 않다. 감질 난다. 무릇 인간, 혹은 여성의 욕망이 그렇지 않을까. 그것이 성욕이든 식욕이든. 소설은 평정을 모르는 욕망의 실상을 현 주변의 인간 관계, 박영한의 장편 『머나먼 쏭바강』 에 등장하는 성애 장면, 무엇보다 현 스스로 써내려 가는 포르노그라피 소설 등을 통해 남김없이 파헤친다. 책조차 현에게는 욕망의 대상이다. 탐욕스럽게 책을 읽는다.

 이런 소설을 하나로 꿰는 열쇳말은 어머니일 것 같다. 소설의 상당 부분이 현과 어머니와의 애증 관계를 그리는 데 할애된다.

 실제 만나본 박씨의 모습은 소설과 사뭇 달랐다. 거침없다기보다 조신해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소설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희생적인 모성보다 본능에 충실한 동물적 어머니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여자이기보다 어머니로 인식되는 사회적 시선에서 벗어나 욕망에 충실하고 살과 피가 도는 어머니를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현에 대한 어머니의 간섭은 극단적이다. 딸이 읽는 책들이 딸을 미치게 만든다며 한데 모아 불태워버린다. 이런 어머니와의 싸움 끝에 결국 현이 깨닫는 건 자신이 누구보다 어머니와 닮았다는 사실. 어머니도 한때 소설을 쓴 적이 있었다. ‘나는’이라는 한 단어만 써놓고 끝내 원고지의 남은 빈 칸을 채우지 못했지만 말이다.

 박씨는 “현과 어머니의 글쓰기는 예술 일반으로 봐도 된다. 결국 두 사람에게 예술 행위는 상처를 극복해가며 치유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여성성에 대한 역동적인 탐문이면서 예술의 의의를 따지는 예술가 소설의 성격을 띤다. 동료 소설가 정한아씨는 “이토록 솔직해도 되는 건가. 우리의 가려진 욕망을 향해 비수로 날아드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제 어엿한 작가로서 자리매김한 박씨. 앞으로 그는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 걸까. “일본 최고의 여성 추리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좋아한다. 기리노처럼 인간이나 사회의 어두운 면을 굉장히 여성적인 방법으로 섬세하게 써보고 싶다.” 박씨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글=위문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