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젊은이들 취업난은 기성세대 죄악 … 그들이 선거서 꼰대 쫓아내기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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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씨가 16일 충북 제천에서 문학강연을 하고 있다. 그는 소설가가 된 사연을 감칠맛 나게 풀어내 청중을 사로잡았다. [제천=프리랜서 김성태]

소설가 김훈(63)씨가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등 최근의 ‘현실정치’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 젊은이들이 꼰대들을 쫓아내기 시작했다”며 기성 정치권을 비판하는가 하면 “난관을 돌파하는 능력이 너무 모자란다”며 젊은 층에 대한 불만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선거 결과가) 세대 갈등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인류의 모습이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런 모습이 요즘 너무 극대화된 것 아닌가 싶다”는 말도 했다.

 김씨는 16일 오후 충북 제천 기적의 도서관에서 문학 강연을 했다. 본지와 문화관광부가 공동 주최한 이날 강연은 문화 소외 지역에 유명 문인을 초청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독서나눔 콘서트’의 세 번째 행사였다.

 최근 19세기 천주교 박해사를 소재로 한 장편 『흑산』(학고재)을 출간한 김씨는 신간 소개, 소설가가 된 사연 등 40분간 강연을 했다. 이어진 청중과의 일문일답 시간. 한 중년 남성이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고 묻자 대뜸 “요즘 젊은이들이 꼰대를 싫어한다”며 딸로부터 들은 ‘꼰대’의 정의부터 소개했다.

 김씨에 따르면 꼰대는 “자라면서 고생한 얘기를 자랑처럼 자주 하고, 자기가 만든 틀에 젊은이를 자꾸 끌어들이려고 하며 잔소리, 간섭이 많은 사람”이다.

 김씨는 “그런데 우리나라에 꼰대가 많다. 고령화되면서 더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선거에서 젊은이들이 꼰대를 쫓아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꼰대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젊은이들과) 공존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발언은 기성 정치권만을 겨냥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에게도 불만이 많다”며 “무질서하고 난관을 돌파하는 능력이 너무 모자란다”고 했다. 하지만 “첨단지식이나 기술에 대한 적응은 뛰어나다. 나이 먹은 사람들은 경험에 의지해 판단하지만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보지 못하는 세계, 미래의 가치에 의해 판단한다”며 다독였다.

 특히 청년 실업과 관련, “요즘 젊은이들의 취업난은 기성 세대의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살아갈 터전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그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고 했다.

 김씨는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해서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편이다. 『칼의 노래』 『흑산』 등 소설에서는 위정자의 탐욕에 대한 분노, 민초의 고통에 대한 연민 등을 명확하게 드러내지만 실생활에서는 관련 발언을 매우 자제하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이날 발언은 작심한 것이라기보다 애독자들이 모인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우발적으로 ‘심중’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문학 강연에서 김씨는 소설가가 된 사연을 특유의 유머를 섞어 감칠맛 나게 풀어내 청중을 사로잡았다. 김씨는 “대학교 3학년 때 『난중일기』를 읽고 충격 받아 결국 소설가가 됐다. 한 권의 책은 한 젊은이의 생애를 바꿀 정도로 놀라운 작용을 할 수 있지만 독서는 결국 책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세상과 맞대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서나눔 콘서트는 (사)한국문화복지협의회가 주관하고, 대우증권·11번가·학고재·도서출판아람 등이 후원한다. 19일에는 소설가 박범신씨가 강원도 강릉에서, 26일에는 작가 이철환씨가 전북 전주에서 각각 강연한다. 전화(02-737-0511)와 인터넷(book@moonbok.or.kr)으로 참가 신청을 할 수 있다.

제천=신준봉·위문희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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