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원순의 터무니없는 등록금 철폐 선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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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15일 대학생들 앞에서 “여러분이 어렵게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해왔는데 등록금 철폐 투쟁을 왜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 대학의 교양강좌 특강에서다. 그의 이런 발언은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자는 대학생들의 주장을 무색하게 할 정도다. 그의 선동적(煽動的)인 주장에 젊은 층이 환호했음은 물론이다. 박 시장은 독일·스웨덴·핀란드 등 유럽의 대표적인 복지국가들의 사례를 근거로 들이댔다. “이런 나라는 등록금을 아예 내지 않는다. 세금을 똑같이 내는데 왜 그들은 (등록금을) 안 내고, 우리는 내야 하느냐”는 게 그의 논거다.

 현재 등록금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점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이달 초 감사원의 등록금 감사에서 드러났듯 대학들이 회계 투명성을 강화하면 등록금을 낮출 수 있다는 결론도 나와 있다. 하지만 유럽국가들과 우리가 처한 배경과 맥락을 깡그리 무시한 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통계에 따르면 독일 등 3개국의 고등교육 투자 비중은 정부와 민간이 8대 2다. 이들 3개국에 사립대는 거의 없고, 국·공립대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중세 이후 교육은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오랜 전통이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 일반대학 184곳 가운데 정부 재정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가 31곳에 불과하다. 내년 고교를 졸업하는 대학 입학생의 86%가 사립대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6·25 전란으로 폐허 속에서 국가가 해야 할 대학 교육의 몫을 육영사업에 뛰어든 개인이 감당해온 배경이 있다. 그러다 보니 등록금 의존형 사학이 대학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 3개국이나 우리나 똑같이 세금을 낸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복지 수준이 높은 만큼 그 나라 국민들의 조세부담률도 우리보다 높다.

 박 시장은 이런 맥락과 팩트(fact)까지 무시한 채 대학생들의 등록금 철폐 투쟁을 부추겨 그 비용을 누구한테 전가하려 하는가. 그는 이미 일반 사립대에 비해 반값에 불과한 서울시립대의 등록금을 반의 반값으로 낮춰주기 위해 서울시민의 세금을 쓰겠다고 했다. 국민 세금으로 부실 사학의 주머니에 들어갈 등록금까지 대주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