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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슈밋 ‘대한민국 인터넷 시민에게 올리는 제언’ … 중앙일보 단독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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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구글과 세종대왕.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다. 하지만 구글의 에릭 슈밋(56·일러스트) 회장은 “한글 창제 등 세종대왕의 혁신은 개방성 덕분에 가능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8일 서울 역삼동 구글코리아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다. 슈밋 회장은 “한국인은 뛰어난 창조성과 재능을 갖췄고, 한국 IT산업은 지속적인 혁신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본지에 개방의 중요성을 피력한 ‘대한민국 인터넷 시민에게 올리는 제언’을 단독 기고했다. 제목은 ‘혁신의 세 가지 법칙:개방, 개방, 개방’이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

 흔히들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즉 혁신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기술은 따라오게 돼 있다.

지난번 한국을 방문했던 2007년 이후 한국 사회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당시에는 인터넷을 통한 모바일 혁명이 과연 일어날지에 대한 논의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더니 모바일 혁명은 예상을 초월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고, 한국에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 2년도 안 돼 2000만 명의 사용자가 생겼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는 이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안드로이드가 오픈 소스라는 데 있다. 바로 개방성이 혁신을 견인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스마트폰뿐만이 아니다. 인도의 탄도미사일, 한국의 한글, 중국의 인쇄술, 일본의 워크맨 등 기술은 혁신의 결과물이지 원인은 아니었다. 이러한 발명이 가능했던 것은 새로운 생각을 수용할 수 있고, 경계를 허물 수 있으며, 협업에 열려 있는 개방적인 환경 덕분이었다.

 개방적인 협업 덕분에 개발자와 소비자는 더 많은 선택권을 갖게 됐다.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 이하 앱) 개발자와 기업가로 이뤄진 글로벌 공동체는 50만 개가 넘는 앱을 만들었고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시켰다.

 협업에 대해 열린 태도는 또 다른 혁신을 불러온다. 구글 지도만 봐도 그렇다. 유난히 비가 많이, 또 자주 내렸던 지난여름 한국 사용자들은 구글 지도를 이용해 폭우 피해 지역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어느 지역에 가장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사진을 올렸다. 구글 지도 서비스를 개방했더니 사람들이 직접 혁신적인 사용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처럼 협업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게 되면 세계를 향해서도 개방된다. 인터넷은 시장·고객·협력업체가 모두 글로벌 무대에 서게 만들었다. 인터넷은 아시아·브라질·러시아·중동 등 새로운 세계에 합류하기 위한 최고의 길이다. 2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꽃가게를 하는 에이드 리스카(Ade Liska)라는 사람은 온라인에 Butikbunga.com을 개설해 부케를 팔면서 BCA 카드로 결제하는 사람들에게 배달 서비스를 해줬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문의 15%가 해외에서 들어왔다. 인도네시아산 꽃을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디어라도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를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아주 작은 예다.

일부는 이러한 개방성에 겁을 낸다. 그러나 실상 숫자를 보면 혜택이 놀랍다. 특히 올해 발표된 경제 보고서를 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인터넷은 호주 국내총생산(GDP)의 3.6%를 창출했다. 이는 호주의 철광석 수출보다 높은 수준이다. 일본에서는 3.7%로 자동차 산업보다 크며, 한국에서는 4.6%를 만들어냈다. 맥킨지는 인터넷으로 일자리가 하나 줄어들 때마다 신규 일자리 2.6개가 생긴다고 추산했다.

 이제 모든 비즈니스는 인터넷 비즈니스다. 인터넷의 경제적 혜택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인터넷을 계속해서 개방해두는 것이다. 결국 개방은 우리 삶의 일부다. 개방이 없으면 소비자는 선택의 묘미를 상실하고, 기업은 자기만족에 빠지며 결국 사회는 혁신에 이르는 동력을 상실하고 만다. 개방성은 모두를 위한 승리 전략이다. 구글의 성공은 완전히 개방된 플랫폼, 즉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인터넷을 소유하지 않기에 모두가 인터넷을 소유할 수 있었으며, 그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심재우·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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