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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교과서에 몇 줄 실린 단종 발자취, 청령포에서 생생하게 느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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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사극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공주의 남자’(KBS)가 호평을 받더니 최근에는 ‘계백’(MBC), ‘뿌리 깊은 나무’(SBS) 등이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지요. 사극에는 종종 ‘역사 왜곡’이라는 말이 따라붙곤 합니다. 실존했던 인물과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부분에는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극적 재미를 더하는 사극만의 특징 때문이죠. 사극을 보고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면 정확한 사실은 무엇인지 확인해보는 절차도 필요할 겁니다. 교과서를 통해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소재가 됐던 조선 6대 단종 임금에 대해 알아본 뒤 기사로 단종 유배지와 역사 유물을 살펴보며 교과서와 드라마에서 알 수 없었던 단종의 실제 모습을 확인해 봅시다.

“단종은 조선 6대 임금이잖아. 다른 임금의 유적은 당시 도읍이던 한양, 그러니까 서울에 남아 있는데 왜 단종의 유적만 강원도 영월에 있을까?” 문화해설사 이갑순(54)씨의 질문에 김호수(강원 석정여중 3)양이 “여기가 귀양지라서”라고 답했다. 이씨는 “맞다”며 “단종은 삼촌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한양에서 500리나 떨어진 산간 오지인 영월로 유배를 당했고 여기서 사약까지 받았다”고 일러줬다. 지난달 24일 이씨의 안내로 김양과 손동호(강원 영월중 1)군이 단종의 자취를 따라가 봤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강원도 영월의 문화해설사 이갑순(왼쪽)씨가 손동호(영월중 1)군, 김호수(영월 석정여중 3)양과 함께 단종 어소가 자리한 청령포를 돌아봤다. 이씨는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을 유적지에서 확인해보면 살아 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명헌 기자]

강과 산으로 막힌 유배지, 청령포

귀양을 온 단종이 살던 어소(왕이 거처하는 곳)가 자리한 곳은 배를 타고서야 들어갈 수 있는 청령포다. 배에 오른 손군은 청령포를 바라보더니 “영월에 살면서도 처음 와본다”며 “경치가 좋긴 한데, 딱 유배지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서강이 삼면을 휘돌아 흐르고 뒤에는 육륙봉이라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어 사방으로 고립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여 있어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청령포에 들어서자 울창한 소나무 숲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씨는 “소나무들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김양은 “어, 소나무들이 전부 단종이 살던 집 방향으로 머리를 숙이고 있다”며 신기해 했다. 이씨는 “이 나무들은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극양수(極陽樹)’라는 품종이라 남쪽으로 굽은 것”이라며 “사람들은 단종의 이야기에 빗대어 나무들이 임금이 사시는 집터에 예를 갖추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얘기한다”고 설명했다.

단종 어소에는 2000년에 복원한 자그마한 기와집 한 채가 있다. 이씨는 옛 문헌의 기록을 인용해 단종이 실제 살던 집의 규모를 설명해 줬다. ‘뒷문으로 물이 들어와서 앞문으로 나간다’ ‘아궁이에 불도 안 들이는 방 두 칸 집에, 한 방에는 단종 임금, 다른 방에는 시녀 궁녀가 살았다’ ‘지붕에 기와가 얹어 있는 게 신기하다’는 내용이었다. 김양은 “초라한 집이었을 것 같다”며 “유배 당시 12살 어린 아이였을 텐데 이런 곳에서 지내느라 무섭고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단종의 손길이 머무른 유일한 유물은 망향탑으로 불리는 돌탑이다. 이씨가 “헤어진 왕후를 그리워하면서 이 돌탑을 쌓아올렸다고 하는데, 망향탑에 담긴 단종의 진짜 마음은 어땠을까”라고 물었다. 손군은 “왕후뿐 아니라 돌아가신 부모님도 보고 싶고…,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암매장한 곳에 조성된 장릉

장릉은 어린 왕의 무덤답게 규모가 작고 단출한 모습이었다. 이씨는 “장릉이 다른 왕의 능과 다른 점을 찾아보라”고 퀴즈를 냈다. 김양이 “크기가 작다”고 말하자 이씨는 “작은 건 사실이지만 왕릉의 특징을 볼 때 크기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가장 큰 차이점은 장소”라고 알려줬다. 왕릉은 도읍지에서 100리 이내에 있는 게 정석이다. 임금이 능행에 나섰다가 국가에 변고가 생겼을 경우 하루 안에 대궐로 돌아갈 수 있는 거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장릉은 한양에서 500리도 더 떨어져 있으니 관행을 깼다는 것이다. 다른 능은 약간 언덕이 진 구릉에 자리하는 데 반해 장릉은 해발 270m 높이에 있는 것도 다른 점이다. 이씨는 “지금 장릉의 자리는 단종 임금을 몰래 암매장한 곳에 그대로 조성되다 보니 이런 차이점이 생긴 것”이라고 알려줬다.

김양이 “다른 나라가 쳐들어온 것도 아닌데 어떻게 임금이 암매장을 당할 수 있느냐”고 되묻자, 이씨는 단종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부터 들려줬다. 단종을 둘러싼 사건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이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고 단종은 왕위에서 물러나 창덕궁에서 지내게 된다. 이후 사육신의 난으로 알려진 병자옥사가 일어난다. 단종 복위를 꾀하다 거사도 일으켜보지 못하고 주모자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로 쫓겨난다. 마지막 사건은 정축지변이다. 또 다른 숙부인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자 단종은 17세에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뒤 시신마저 강에 버려지게 된다. 이때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은 엄홍도로 알려져 있다. 장릉은 엄홍도가 자신의 선산에 단종의 시신을 몰래 묻어둔 자리다.

손군은 “매년 단종 행사 때마다 장릉에 오곤 했는데, 역사적인 내용은 전혀 몰랐다”며 “알고 나니 단종을 왜 ‘가장 슬픈 왕’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즉위부터 사약을 받기까지 한눈에 확인

김양과 손군은 장릉 옆에 있는 단종역사관에도 들렀다. 이곳에는 단종의 즉위식 모습부터 영월 시내의 관풍헌에서 사약을 받는 모습까지 연대기식으로 모형이 전시돼 있다. 김양은 “자주 와보던 곳인데, 단종에 대해 알고 나서 둘러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손군은 “교과서에는 단종과 세조에 대해 한 페이지 분량도 안 되게 기술돼 있어 이런 풍성한 이야기가 숨어 있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씨는 “교과서나 박물관은 역사의 핵심적인 내용만 간략 기술해 둔 요약본”이라며 “관련된 책을 많이 읽고 실제 장소를 찾아가 보는 노력을 하다 보면 살아숨쉬는 진짜 역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중앙일보 기사로 더 생각해 보세요

살아 있는 역사 배우려면

체험학습이야말로 제대로 된 역사 공부라고들 한다. 오감으로 받아들여 이해도 빠른 데다 기억에 오래 남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보고 만져본 문화재나 유물을 교과서를 통해 정리할 때 입체적인 학습이 가능해진다. 역사 학습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역사를 주제로 한 체험학습 기회도 넓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작정 떠나는 체험학습보다는 사전에 책을 통해 공부할 거리를 찾고 답사 후 현장에서 학습한 내용을 정리하라고 입을 모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의 저자 명지대 유홍준 교수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로 사전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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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9일자 33면 역사 공부 방법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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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8일자 26면 아차산·남한산성·제주돌담 … 전국 29곳서 생생 문화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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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산과 스토리텔링

우리 역사에는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숨어 있다. 무미건조한 장소와 흔한 물건도 역사 속 숨은 이야기와 결합하면 매력적인 기념물로 변한다. 주변에 널린 막돌을 쌓은 듯한 돌탑이 단종의 슬픈 사연과 맞물리면 돌 하나하나에 의미가 새겨진 망향탑이 돼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식이다. 경희대 최혜실 국문과 교수는 “죽어 누워 있는 우리 문화유산에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며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애틋한 이야기들을 찾아내자”고 주장한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같이 거대한 유물이 아니더라도 상상력을 깨어나게 하는 신비로운 전설 한 편이 우리 문화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다는 말이다. 간단한 역사 기록에 작가적 상상력을 조합해 대하소설이나 사극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지방자치단체마다 지방의 문화유산을 테마공원으로 조성하는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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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5일자 E14면 ‘백동수’ 속 최민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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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6일자 45면 문화유산과 스토리텔링의 만남
2008년 12월 5일자 16면 단종에 얽힌 전설 담아내 영월 노루조각공원 첫선
2008년 4월 23일자 14면 단종·왕비 551년 만에 ‘영혼 상봉’

이번 주 주제와 관련된 NIE 활동 이렇게

1. 아래 글은 세조와 단종에 대한 교과서 속 설명이다. 이를 토대로 세조의 계유정난에 대해 자신의 평가를 담아 신문 사설 형식의 글로 적어본다.

나이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수양대군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세조(수양대군)는 직전법을 실시해 국가 재정을 늘리고 군사 제도를 정비하여 국방을 강화하였다. <중학교 역사上(비상교육) 184쪽>


2. 아래 기사를 참고해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의 심정을 유추해 가상 인터뷰를 해본다.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쪽은 험준한 산과 절벽으로 막혀 있는 곳, 청령포. 노산군으로 강봉된 단종이 굽이치는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올라 한양을 그리워 하며 돌 하나, 돌 둘 … 하며 쌓아놓은 작은 돌탑처럼 애잔한 그 마음은 세월마저 비켜간 채 한이 되어 거기 서려 있었다. <중앙일보 2011년 6월 18일자 30면 단종에 꽂혔다!>

3.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불행한 사건을 되풀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 아래 기사를 참고해 단종의 이야기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찾아본다.

당신은 유적지를 돌아볼 때마다 사멸하는 것은 무엇이고 사람들의 심금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를 돌이켜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새로이 읽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하라고 했습니다. ‘과거’를 읽기보다는 ‘현재’를 읽어야 하며 ‘역사’를 배우기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중앙일보 1996년 2월 18일자 11면 단종 유배지 청령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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