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선 ‘나’에 관심, 한국선 '남이 보는 나'에 관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2호 14면

심리학은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데도 즐겨 등장한다. 우리 사회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한국인의 심리코드를 펴낸 연세대 황상민(심리학과) 교수를 28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그 요지.

한국인의 심리코드 펴낸 황상민 교수

-심리학에 대중적 관심이 많아졌는데.
“관심이 많아진 건 아주 뚜렷한 현상이다. 전에는 삶에 대한 문제를 경제적인 것으로 돌리곤 했다. 그런데 경제적 문제, 배고픔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됐는데도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고, 이게 심리적 문제가 아니겠냐고들 생각하게 됐다. 그 사이 심리학적 배경의 ‘셀프 헬프(self-help)’ 서적도 많이 소개됐고, 기업 같은 데서 관련 교육도 늘었다. 일례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같은 책도 심리학이 바탕이다. 대중에게 심리학이 ‘퀵 솔루션’의 제공자처럼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는 건 심리학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심리학을 통한 문제 해결의 초점이 자기를 이해하는 데 있다. 반면 한국에선 심리학에서 삶의 정답, 그중에도 인간관계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정체성의 탐색에서 시작된 게 심리학인데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심이 많다.”

-왜 최근 들어 관심이 많아졌을까.
“미국에서 심리학은 개인주의 개념이 확립된 1960년대에 대중적으로 확산됐다. 히피·민권운동·반전시위 등으로 개인의 심리적 이슈와 소수자들이 겪는 심리적 문제에 관심이 높아졌고, 이런 개인적 다양성을 사회적으로 통합하는 데 심리학이 활용됐다. 미국의 60년대는 우리의 80년대와 비슷하다. 이후 90년대 들어 한국도 개인주의 성향이 급속히 확산됐고, 2000년대 들어 일상화됐다. 특히 한국에서는 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와 맞물려 ‘내가 속한 집단이 나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개인주의가 더 심해졌다. 이와 병행해 우리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섰다. 대개 1만 달러가 넘으면 경제적 측면보다 심리적 측면에 주목하게 된다고 본다. 한국은 1만 달러를 넘은 게 88 올림픽 무렵이었다. 그 시점에서는 심리학적 관심을 수용하기 힘들었던 것이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달라졌다. 많은 사람이 심리적인 것이 문제라는 인식에는 도달했지만, 왜 문제인지는 아직 관심이 충분하지 않다. 국내에서 인기를 끈 심리학 관련 책들은 요리책, 즉 인간관계에 대한 해법을 요리 레시피처럼 제시하려는 것이 많았고 이를 정답으로 받아들이려는 독자들의 경향이 강했다. 그런데 독자는 정답인 것 같은 이런 일반론이 어느 순간 구체적인 자기 삶과 관련 없다는 걸 깨닫는다. '성공하는…'이 많이 팔렸지만 그 책을 읽었다고 다 성공한 게 아니듯 말이다.”

-그렇다면 심리학에 뭘 기대해야 하나.
“경제학을 공부한다고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사는 게 아닌 것처럼 심리학을 공부한다고 인간관계를 잘 해결하는 건 아니다. 동양과 서양은 인간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미국 사람들에게 개인이란 기본적으로 독립된 존재이고, 정상적인 인간은 혼자 살아가는 인간이다. 한국에서 정상적인 인간은 사람 인(人)의 생김새처럼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이다. 미국의 심리학은 미국 사람들이 고민하는 문제를 탐색한다. 과거 내가 한국에서 배웠던 심리학은 은연중에 우리도 미국 사람과 동일할 것이라고 믿고 받아들이게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다르지는 않지만 서구의 사례를 적용할 수 없는 우리만의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 이걸 해결하려면 심리학이 지식의 중개상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문제를 탐색해야 한다.”

-미국의 개인주의가 60년대 이후 확립된 것이라면 정상인 개념도 과거에는 다르지 않았을까. 또 심리학에서 정답을 찾으려는 게 한국만의 경향은 아닐 텐데.
“정신과에서 의사들이 우울증·강박장애 등 정상·비정상을 진단하는 데 백과사전 역할을 하는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이 미국에서 정리된 게 60년대의 일이다. 인류 역사에서 정신병에 대해 본격적 탐색이 시작된 건 100여 년밖에 안 된다. 과도한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 대한 약물 치료나 심리적 치료가 대중화된 것도 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자기가 가진 문제를 직면하는 것을 거부하고, 심리 치료 과정에서도 위안과 위로만을 얻으려는 것은 심리적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