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자동차 옵션 축소, 누구를 위한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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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채승기
경제부문 기자

“마케팅 교과서에는 미끼상품이 있어야 한다고 돼 있지만 미끼상품이 있으려면 금형투자도 해야 하고 생산비가 올라간다. 주력 모델을 경쟁력 있게 가져가려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지난주 i30 신차 발표회에서 만난 현대차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가 말한 미끼상품은 자동차의 저가 트림(같은 차종 내 다른 가격대)이다. 현대차가 편의사양이 거의 장착되지 않은 ‘깡통차’는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는 또 “최근 현대차의 브랜드 파워가 올라간 게 트림을 줄였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자신감이 있어서 과감하게 가격을 지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신형 i30을 출시하면서 기존 모델이 갖고 있던 5종류의 트림을 유니크·익스트림 두 가지로 축소시켰다. 전자파킹브레이크 같은 고급 편의사양이 대거 장착되면서 가격은 300만~400만원가량 비싸졌다. 최근 출시된 i40도 마찬가지다. 스마트·모던 두 가지 트림에 가격은 3000만원을 육박한다.

 소비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고급화되어 가는 소비자 취향에 맞춘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브랜드 아이덴티티 강화를 위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필요하지도 않은 옵션 좀 붙여 놓고 가격을 거의 20%나 올렸다’는 비판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큰 폭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이에 현대차는 가격구조상 저가 트림을 두면 손해 보는 가격을 상위 모델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생산비를 줄이려는 노력 없이 소비자에게 가격인상분을 전가하겠다는 태도는 옳지 않다. 특히 “이 차(i30)를 5만~6만 대 팔아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고 1만 대만 팔아도 수출에서 다 소화할 수 있어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 있었다”는 관계자의 얘기는 현대차가 국내시장과 소비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미국·유럽에선 가장 낮은 가격의 기본형 차량에 소비자가 옵션을 추가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매 방식이다. 일부 옵션을 뺄 수 있는 ‘마이너스 옵션’도 가능하다. 현대차도 소비자 중심으로 마케팅·가격 전략을 짜야 한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금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다.

채승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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