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에 녹은 '달콤한 문화사'

중앙일보

입력

캐나다 여성 38%가 초콜릿과 섹스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초콜릿을 택할 것이라는 조사가 나온 적이 있다.

도대체 초콜릿이 뭐길래. 1998년 영국의 한 제과회사의 통계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1년에 평균 16㎏의 초콜릿을 먹으며, 미국인 역시 10㎏은 소비하고 있다. 초콜릿은 서구인들에게 이미 문화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인류학자이자 음식사학자 소피 코. 마이클 코 예일대 인류학과 명예교수 부부가 쓴〈신들의 열매 초콜릿〉(서성철 옮김.지호.1만4천원)은 초콜릿의 역사는 물론 이를 통해 유럽과 중앙 아메리카의 문화사를 함께 들려준다.

당초 이 책은 부인 소피가 초콜릿의 역사를 완성하기 위해 평생 모은 자료를 토대로 집필에 들어갔으나 예기치 못한 암으로 두 개 장의 초안만을 남기고 숨졌다. 중앙 아메리카 연구자로 이름 난 남편 마이클은 아내의 뜻을 이어받아 수천 쪽에 달하는 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분류해 책을 완성했다.

부부 합작품인 이 책은 방대한 사료와 정복자들의 증언록, 그림문자 등에 고고학.식물학.요리법의 식견을 동원하고 있어 다양한 지식 전달은 물론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첫 가공 초콜릿을 만든 사람들은 약 3천년 전 멕시코 남부 저지의 산림지대에 살았던 올멕족.

마야족의 먼 조상인 이들이 인류 최초로 초콜릿을 마시는 법과 카카오란 말을 만들어낸다. 이를 기점으로 중앙 아메리카에 퍼지기 시작한 초콜릿은 왕족.귀족.전사 등 특권층만이 먹는 신분의 상징이 됐다.

초콜릿이 유럽인과 처음 만난 것은 1502년. 과하나에서 콜럼버스가 카카오를 선적한 원주민 배를 만나면서부터다. 당시 초콜릿은 아즈텍족과 마야족 사이에서 음료뿐 만 아니라 화폐로도 사용할 정도로 주요한 농작물이었다.

17세기 작가인 프란시스코 데 카르데나스는 "카카오 콩이 중앙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 현금 구실을 해 가정용 소품들을 구입하는데 사용된다" 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스페인 식민 지배 이후에도 계속됐는데 아즈텍족 중엔 가짜 카카오 콩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 화폐 관리에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유럽인들은 처음 원주민들이 입술과 수염에 붉은 색 초콜릿을 묻혀가며 먹는 것을 보고 '돼지들이 먹는 음료' 라 생각했을 정도. 그러나 곧 문화가 교류하면서 초콜릿은 스페인으로 파고 든다.

1590년 예수회 수사 호세 데 아코스타는 "스페인 여자들은 이 검은 초콜릿 음료에 사족을 못쓴다" 고 표현할 정도로 인기를 얻는다. 스페인을 점령한 초콜릿은 바로크 시대(17~18세기)에 이르러 유럽 전역으로 확대된다.

초콜릿이 현재의 고체 형태로 등장한 20세기에 들어서다. 그전까지 초콜릿은 물에 타 마시는 음료가 전부였다. 저자는 초콜릿의 재탄생을 고체 초콜릿이 만들어진 시점으로 잡는다. 초콜릿은 적어도 2천8백여년 동안 특권층이나 부유한 계층의 전유물이었지만 고체 초콜릿이 탄생함으로써 일반인들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지호출판사는 최근 몇 년 간 '연필' '의자' '포크' '감자' '설탕' '손' 등 생활과 친숙한 사물들을 통한 문화사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작은 것에서 큰 의미를 찾는 즐거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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