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는 진정 생명력을 확장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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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성 표현으로 관심을 일으키는 작가 마광수 님을 만났습니다. IT 컨셉의 주간지 〈iWeekly〉에 새 연재물을 싣게 된 것을 계기로 〈iWeekly〉의 편집장 유인종 님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하게 된 거였어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광수 님은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구성애 님의 방송 프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마광수 님 : "난 그 방송도 별로 동의할 수 없어요. 요즘 종족 보존을 위해 섹스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섹스는 왜 하는가? 평생을 술과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며 하급 노동자로 전전한 현대 미국문학의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더' 찰스 부코우스키(1920-1994)가 생각났습니다. 〈선술집(Barfly)〉이라는 제목의 영화에서 퇴폐적인 지식인으로서의 부코우스키 역을 열연했던 미키 루크도 떠올랐어요. 마광수 님을 보고 찰스 부코우스키를 떠올린 것이 잘못이었던가요? 마광수 님은 뜻밖에도 찰스 부코우스키를 처음 듣는다고 하시더군요.

최근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바다출판사) 라는 단편집이 출간되면서 찰스 부코우스키가 국내엔 처음 소개되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시인의 여자들〉(문학사상사, 1993년) 이라는 제목의 고백록적 장편이 출간됐지요. 부코우스키와는 또 다른 삶이지만 뭔가 같은 느낌을 주는 마광수 님께 부코우스키 책을 권해드렸습니다.

"기묘한 일이지만, 남자들이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쏟아붓는 에너지의 양은 실로 막대하다. 생각건대, 여자를 정복하는 일은 건강한 남자의 가장 기본적이 메커니즘의 하나일 것이다. 젊은 여자를 보면, 알몸이 됐을 때는 어떤 몸매를 하고 있을까를 상상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거개의 독자들이 편하게 갖는 생각이면서도 겉으로 표현하기를 꺼리는 이야기를 거침없는 표현으로 내뱉어대는 〈아웃사이더〉의 작가 콜린 윌슨의 〈어느 철학자의 섹스 다이어리〉(푸른숲, 1993년) 의 한 대목입니다.

콜린 윌슨은 이어서 "도대체 여자에 따라 그 부분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는 걸까? 차이 따윈 있을 리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고 하지요. "오르가즘을 느낄 때 여자들마다 보이는 미묘한 차이를 즐기기 위해 더 많은 여자들을 찾게 된다"고 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1990년) 의 밀란 쿤데라와는 반대되는 의견이군요.

지하철이나 버스 등, 공공 장소에서 내놓고 책을 보기에 책 제목이 조금은 쑥스러운 〈어느 철학자의 섹스 다이어리〉는 "섹스의 힘 속에서 철학자들은 '활동 중인 우주' 그 자체의 목적을 규명"하기 위해 쓰여진 윌슨의 역작이에요.

섹스는 다분히 개인적인 본능과 감정에 충실한 행위인 까닭에 섹스에 대해 밀도 있는 글이라면 대부분 고백록의 형식을 갖게 마련입니다. 이 책도 섹스에 대해 보다 솔직하고 밀도 있게 풀어가기 위해 일기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일기의 서술자인 제라드 솜은 윌슨이 만들어낸 소설 속 철학자이지만, 가만 읽다 보면 마치 윌슨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용해된 듯, 대단히 섬세하게 묘사됩니다. 노점상 앞의 많은 인파들 중에서 뒤편의 젊은 여자의 몸이 자신의 엉덩이에 집요하게 마찰되는 순간 느끼게 되는 성적 흥분과 오르가즘은 마치 독자들 스스로의 경험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시작된 제라드 솜의 섹스 경험은 캐롤라인과 가트루드라는 두 여자 사이에서의 경험으로 이어집니다. 캐롤라인이 가트루드의 조카라는 사실 때문에 이 삼각관계는 더욱 자극적이지요. 그러나 제라드 솜의 섹스 경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밖에 다른 여자들과도 다양한 섹스 경험을 나누게 되고, 이를 아주 꼼꼼히 자신의 일기에 묘사하지요.

윌슨이 이 작품에서 온갖 섹스의 경험을 이처럼 상세히 풀어놓는 까닭은 섹스 안에는 생명력을 확장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음을 입증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랍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한 철학자의 자극적인 섹스 경험담을 흥미롭게 읽어가는 동안 남녀간의 교합이 단순히 본능적인 쾌락을 위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하려는 겁니다.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니체, 키에르케고르 등의 철학자와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대문호의 주장을 동원합니다. 단순히 섹스와 관련한 경험담을 쓴 일기라기보다는 섹스에 대한 철학적 사색의 결과를 적은 철학 서적 같은 느낌을 줍니다.

전반부에서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었던 섹스 다이어리는 후반부에서 '블랙 매직'을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조금은 복잡해지지요. 블랙 매직은 악마를 불러내는 마술을 이야기합니다. 악의 힘을 이용하는 마술이지요.

블랙 매직은 마약과 섹스로 이어지면서, 섹스와 관련한 환상을 높여줍니다. 마약이 가지는 효과를 섹스로 이어가는 겁니다. 즉 자신의 본능 안에 감춰져 있는 잠재적 생명력을 마약과 섹스를 통해 확장하고, 이를 보다 고양된 상태로 진화할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바로 악마의 힘을 이용한 마술이 필요한 거랍니다.

성 담론이 턱없이 무성한 요즘, '포르노그라피'를 책 제목에 달고 나오는 게 마치 베스트셀러의 보증수표처럼 돼 있는 때에 한참 전에 나온 〈어느 철학자의 섹스 다이어리〉를 다시 들춰보게 되는 이유는 있습니다. 자신의 섹스 경험을 이처럼 솔직하게 고백하고, 끊임없이 섹스에 대해 사색하고 탐구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책을 만나기 쉽지 않은 까닭입니다.

"자신에겐 결여되어 있는 현실성이 타인의 존재에는 감추어져 있다는 거짓된 개념이 곧 섹스의 환상이다."(이 책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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