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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중 경쟁에서 ‘꽃패’를 잡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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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국민소득 120달러의 나라 대통령이 1965년 5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에서 최빈국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대한 것이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극진히 대접했고, 심지어 박정희 대통령을 위해 뉴욕에서 오색 색종이를 뿌리는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마련했다. 그 이후 최고의 환대를 이명박 대통령이 받았다. 미국이 절실히 한국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46년 전 최빈국 한국에 원했던 것은 베트남으로의 전투병 파병이었지만, 현재 미국은,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에 정치·경제·안보 등 다차원에 걸친 전략적 협력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을 앞두고 많은 난관에 직면해 있다. 미국 경제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월스트리트로 쏟아져 나온 젊은이들은 연일 분노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란 나라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가 전하고자 하는 ‘Can Do’(할 수 있다) 정신의 모범사례다. 세계 최빈국이 어떻게 경제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는지, 엄청난 한국의 교육열이 만들어낸 수많은 성공 신화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국민들의 노력 등 지금 미국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한국은 갖고 있다. 오바마는 주요 연설마다 한국을 거론한다. ‘Can Do’의 나라 대통령의 국빈방문은 오바마가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대변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성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대통령후보 시절 한·미 FTA에 부정적이던 오바마가 이 대통령 방미에 맞추어 의회 비준을 얻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만큼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애플과 삼성전자가 경쟁을 하고, GM의 완성차 부품 35%가 한국산이다. 미국은 한·미 FTA를 발판으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동아시아 지역에의 연계를 모색하고 있다. 한·미 FTA는 태평양국가 미국의 활로가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을 극진히 환대한 이면에는 사실 미국의 중대한 전략적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초점은 지난 10년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벗어나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부상과 관련,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은 핵심 사안이다. 정상회담에서 오바마가 말한 한·미동맹이 ‘미국에 태평양지역 안보를 위한 초석’이란 표현은 립서비스가 아닌 가감 없는 미국의 생각을 반영한다. 그동안 초석이던 미·일동맹이 일본의 리더십 부재와 대지진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동맹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다원적인 한·미전략동맹으로의 진화는 지역질서의 일대 변화를 촉진할 것이다. 당장 일본은 한·미 FTA에 따른 경제손실을 연 4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가장 큰 자극은 중국이 받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는 중국에 긴요하다. 건국 직후 취약했던 중국이 1950년 북한이 위태로워지자 한국전쟁에 전면 개입했다. 지도에서 보면 베이징은 산둥반도와 우리 웅진반도에 둘러싸인 만(灣) 한가운데 위치하며 사실상 한반도가 크게 둘러싸고 있다. 중국이 세계로,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한반도를 통과해야 한다. 당장 중국은 한국민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한·중 FTA를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등 러브콜을 강화할 것이다.

 미·중 경쟁이 바야흐로 한국을 둘러싸고 일어날 형국이다. 최악의 지정학적 조건이지만, 발상을 바꾸면 우리는 세계 최강인 두 나라 사이에서 ‘꽃패’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더 이상 패망을 앞둔 구한말 조선도, 1965년 120달러의 최빈국도 아니다. ‘Can Do 정신’을 잊지 않는다면 미·중 경쟁의 장기판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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