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밀린 삼성 … 최지성 “애플의 이익 침해 좌시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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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성 부회장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특허 소송전에서 ‘4연패’를 당했다. 14일 네덜란드 헤이그법원은 삼성이 제기한 아이폰·아이패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삼성으로선 자사의 강점인 3세대(G) 표준 특허를 내세워 제기한 소송에서 첫 패배를 기록한 것이라 더욱 뼈아프다. 로이터 통신은 “헤이그법원의 결정은 삼성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제기한 아이폰4S의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에도 큰 타격”이라고 내다봤다.

헤이그법원이 삼성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사유는 삼성의 3G 통신기술이 이른바 ‘필수 특허 기술’인 만큼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FRAND·프랜드) 방식’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양사는 같은 날 한국 법정에서도 동일 이슈로 공방을 벌였다. 삼성은 이미 독일·호주에서 갤럭시탭10.1, 네덜란드에서 갤럭시S 시리즈의 판매 금지를 당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최지성 부회장은 같은 날 오히려 더욱 강력한 대응을 시사했다. 최 부회장은 “(애플을) 앞으로도 제1거래처로서 존중하는 것은 변함 없지만, 우리 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좌시할 수 없다”며 “분리해서 그런 논리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맞으러 김포공항에 나왔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최 부회장은 “지금까지는 저쪽(애플)에서 고른(선택한) 위치에서, 저쪽에서 정한 논리로 페널티킥을 먼저 찼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소송을 먼저 제기한 것이 애플인 만큼, 초반 애플의 우세는 자연스러운 일이란 뜻이다.

 최 부회장의 자신감은 상당 부분 탄탄한 통신 표준 특허 라인업에서 나온다. 애플의 ‘주 무기’가 멀티 터치, 포토 플리킹 같은 일반 특허인 점과 대비된다. 문제는 바로 그 표준 특허가 헤이그 법정에선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 이에 대해 삼성 관계자는 “삼성의 통신 관련 특허는 1만2000여 건에 이른다.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13일(현지시간) 삼성은 애플의 ‘텃밭’인 미국에서 첫 소송전을 치렀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지방법원은 이날 애플이 제기한 삼성전자 스마트폰·태블릿PC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의 심리를 진행했다. 한국계 루시 고(한국명 고혜란) 판사는 “갤럭시 탭이 아이패드 특허를 침해했으나 애플 특허의 유효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해 주목 받았다. 특허의 법적 유효성을 입증할 책임이 애플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애플이 제기한 기술 특허 1건(스크롤바운싱)에 대해서도 “침해가 아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해선 “두 제품이 너무 똑같다”는 반응을 보여, 아직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삼성과 애플은 14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부장 강영수)에서도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이 재판은 12월 9일 속개된다.

박현영·구희령·심서현 기자

◆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기술 표준화 과정에 참여한 특허권자에게 요구되는 의무. 한 기업의 특허가 기술 표준으로 채택되면 타 회사들이 그 특허를 쓰고자 할 때 특허권자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협의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표준 특허를 가진 업체가 무리한 요구를 해 제품 생산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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