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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모차르트 교향곡이 괴테의 펜을 춤추게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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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문학과 음악의 황홀한 만남
이창복 지음, 김영사
699쪽, 3만3000원

문호 괴테는 작가로만 기억되지만, 대단한 음악 매니아이기도 했다. 피아노·첼로 연주를 평소 즐긴데다가 당대의 명인들을 초청한 주말 음악회를 자기 집에서 열었다. 특히 모차르트광이라서 그의 오페라 ‘피가로’ ‘마술피리’ 등을 자신이 26년 지배인으로 있던 바이마르극장 무대에 연속해 올렸다.

 단순한 취향 반영일까? 아니다. 그건 “(문학과 음악) 두 예술의 상호 관계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려는”(101쪽) 노력이자, 음악이 갖는 치유의 힘을 믿었던 탓이다. 74세이던 그가 19세 소녀 울리케에 청혼했다가 딱지 맞은 뒤의 절망감을 음악으로 달랬다. 그의 작품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등에 음악에 관한 성찰이 많이 삽입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스물한 살 연하의 베토벤은 ‘음악광 괴테’의 특징을 감지했다. “괴테 작품은 곡 붙이기가 용이하다”고 밝혔는데, 그의 서정시에는 음악적 요소가 그만큼 풍부했다. 이런 내용을 섬세하게 다룬 『문학과 음악의 황홀한 만남』의 저자는 이창복(74) 외국어대 명예교수. 6년간 이 책 집필에 매달렸다는 그의 목표도 야심차다. “자매 예술인 문학·음악의 상호작용에 관한 미학적 성찰”.

왼쪽부터 베토벤, 괴테, 모차르트.

 이런 작업은 독일에서도 산발적 연구가 전부란다. 이에 비해 자신은 “총괄적이고 체계적인 개관”을 하겠다는 자부심이다. 그렇다고 지루한 논문 식 서술은 아니고 마르틴 루터·괴테에서 프리드리히 실러·토마스 만에 이르는 작가별로 문학·음악의 상호작용을 다뤄 부담스럽지 않게 읽힌다.

 때문에 음악애호가라면 익히 아는 에피소드를 정교한 고증 아래 재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일테면 베토벤 합창교향곡 4악장은 실러의 시 ‘환희에 부쳐’에 곡을 붙였다. 그 기막힌 만남은 둘의 정치성향이 똑 같기 때문에 가능했다. 열렬한 공화주의자 둘은 루이 16세나 나폴레옹 등 군주·독재자를 미워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신중했다. 실러의 시 원본(1785년)에는 반(反)전제군주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표현했는데, 그는 작곡과정에서 이를 삭제했다. 실러도 18년 뒤 이걸 손보며 “거지는 왕자의 형제가 되리라!”는 정치적 선동을 “모든 인간이 형제가 되리라”고 고쳤다. 베토벤은 다시 개작(改作)을 했다.

 즉 실러의 시 말미에는 권주가(勸酒歌)가 삽입돼 있다. “형제여, 잔을 들거들랑 /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 거품을 하늘까지 치솟게 하라….”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한 도취적 찬양인데, 베토벤은 이 대목도 뽑아냈다. 그 결과 우리가 듣는 ‘합창’은 순수한 환희와 유토피아 찬양의 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공들인 대목은 작곡가 바그너와 철학자 니체의 관계. 둘 사이 우정과 교유는 19세기 서양문화사 명장면의 하나인데, 실제로 그들은 음악과 철학의 ‘샴쌍둥이’ 관계였다. 하지만 훗날 서로를 깍아내리며 차갑게 등을 돌렸다. 그런 배경을 니체의 철학으로 더듬어낸 대목이 설득력있다.

 평이하면서도 깊이있는 서술, 하지만 저자가 기대했던 ‘융합 예술연구’에 근접했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아쉽게도 이 책은 음악과 문학 사이의 산술적 연결 내지 시론(試論)에 그친다. 근대서구에서 출현한 모더니즘 문학과 음악을 인류의 보편예술로 설정한 태도도 좀 걸린다. 서구중심주의의 혐의가 있기 때문인데, 실은 꽤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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