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청소년’대신 ‘푸름이’란 말 예쁘지 않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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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 쓰기
최종규 글, 호연 그림
철수와영희, 272쪽
1만3000원

징검돌·골마루·동무·거님길…. 잃어버린 우리 말이 이렇게 많았던가.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말 쓰임새를 돌아보는 책이 나왔다.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 쓰기』는 우리말엔 한자어가 절반이 넘어 순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없다는 생각을 뒤집는 책이다.

 ‘우리말 지킴이’로 일하는 지은이는 우리가 쓰는 말이 거의 일본식 한자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그녀’는 ‘she’를 ‘被女(피녀)’로 옮긴 일본말을 한글로 옮기며 생긴 말투란다. 우리말에서 3인칭을 가리키는 말은 남녀 모두 ‘그’나 ‘그이’다. ‘그대’나 ‘이녁’이나 ‘그이’나 ‘당신’, ‘자네’나 ‘저희’, ‘네놈’이나 ‘네년’은 있지만 ‘그녀’는 없었다. 국어(國語)라는 말 조차 일본투라고 한다.

 ‘열심(熱心)히 공부(工夫)하다’는 ‘힘껏 배우다’로 바꿀 수 있고, ‘알맞은 단어(單語)의 선택(選擇)이 필요(必要)하다’는 ‘알맞은 말을 골라야 한다’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한자말에 영어로 뒤범벅인 말글을 써야 지식이 있어 보인다는 생각이 온 나라의 말투를 바꿔놓았다.

 ‘장님’이란 우리말을 버리고 ‘시각장애인’이라 일컫는다 해도 삶과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무슨 보람이 있느냐고 지은이는 되묻는다. ‘동무’처럼 정다운 말이 북한에서 널리 쓰인다는 이유로 몹쓸 말처럼 된 일도 안타까워한다. 영어투의 ‘가지다(have)’나 ‘속(in)’을 마구 쓰면서 우리 말투를 일그러뜨린다는 점도 꼬집는다.

 지은이의 우리말 사랑은 남다르다. 아이의 이름부터 ‘사름벼리’ ‘산들보라’라 지었다. 이름을 한두 글자로 짓는 틀은 “한문 속에서 살며 한자 이름 지어 붙이던 양반 삶자락”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에서다. ‘국어’를 교육하기보다 ‘우리말’을 가르쳐야 한다며 쓴 책이라 지은이는 힘을 다해 우리말글을 썼다. 청소년을 ‘푸름이’라 부르고, 읽는 이를 ‘말사랑벗’이라 이른다. 세종대왕은 ‘세종 큰 임금님’이라 바꿔 부른다.

 이렇게 우리말을 그러모아 쓴 책을 읽어내기란 한자가 숭숭 섞인 글을 읽는 일 못잖게 힘들다. 느낌글(서평)도 되도록 우리말로 쓰려니 한 줄 한 줄이 더디 나간다. 그만큼 틀에 박힌 한자어투가 손에 익어서일 터다. 한글날을 앞두고 무엇이 바른 우리말인지 생각해 보는 데엔 더없이 맞춤한 책이겠다. 겉만 번드르르한 글보다 알맹이가 있어야 좋은 글이라는 참한 뜻도 담겼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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