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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위한 ‘도가니’는 언제 끓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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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권혜진
이화여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전국이 영화 ‘도가니’로 분노의 도가니가 되어 들끓고 있다.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이 철저히 유린당하고, 이를 감시해야 할 사회는 그 치부를 애써 외면했다. 이제야 우리 스스로의 무관심과 무지·무능에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탈북자 인권에 대한 대한민국의 무관심은 비등점(沸騰點)은커녕 빙점에 가깝다. 중국에 머물고 있는 수만 명의 탈북자는 강제낙태·유아살해·성폭행과 구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일 일본 정부는 북한을 탈출해 일본에 머물던 북한 주민 9명의 신병을 본인들의 의사대로 대한민국으로 보냈다. 반면에 중국은 중국에 머물고 있던 35명의 탈북자를 체포해 북한으로 강제송환하는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와 엄청난 물적·인적 교류를 하는 두 나라의 대처는 극과 극으로 판이하다. 그 이유는 중국과 북한이 1998년에 체결한 ‘국경지역에서 국가의 안전과 사회질서 유지 사업에서 호상 협조할 데 대한 합의서’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협약에 따르면 중국 공안에 체포된 탈북자들은 중국의 변방 수용소에서 조사받은 뒤 강제 북송된다. 중국의 강제소환은 국제법인 ‘강제소환 금지 원칙’에 명백한 위배행위가 된다.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은 탈북자들을 가리켜 ‘조국을 배신한 변절자들’로 규정했다.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엄청난 처벌뿐인 것이다.

 북·중 간에 강제송환에 대한 협약이 엄연히 존재한다면 우리 정부도 중국과 탈북자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조용한 외교’에 머물러선 안 될 것이다. 탈북자 인권문제에 관한 보편적 상식이 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권단체들도 나서 분노의 도가니에 불을 지펴야 한다.

권혜진 이화여대 북한학과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