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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철수와 영이’는 교과서에 언제 실렸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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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제 행정·교육제도의 틀을 본떠 시작된 국정교과서의 삽화엔 시대별 특성이 반영됐다. 1906년 나온 ‘고등소학독본’ 권2 제44과에 실린 실험 장면(왼쪽 사진). 전문적인 실험 기구가 없던 시절, 대야에 물을 담고 대롱으로 부는 실험을 통해 공기의 생성 원리를 이해했다. 일제 강점기에 국어는 일본어였고 우리말글은 조선어로 간략하게 취급됐다. ‘초등조선어독본’ 권1 제18과에 실린 삽화(오른쪽 사진)에는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생들의 모습 뒤로 일장기가 휘날린다. 군국주의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 5일은 ‘교과서의 날’이다. 1948년 10월 5일 정부 수립 후 최초로 학교교육에 사용할 교과서 ‘초등국어 1-1’을 발행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철수야 놀자 영이(이후에 영희)야 놀자”로 알려진 이른바 ‘바둑이와 철수’ 본이다.

 우리나라 교과서의 역사는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학계에선 최초의 공립교육기관인 ‘육영공원’(1886년 9월 설립)의 학습용 교재로 쓰인 『사민필지(士民必知)』를 근대 교재의 효시로 본다. 국정 교과서는 1895년 학부(學部)에서 편찬한 『국민소학독본(國民小學讀本)』이 최초다. 『국민소학독본』은 국어뿐 아니라 세계사·지리·농업 등을 포괄하는 종합교과서였다.

 국립국어연구원이 ‘교과서의 날’과 565돌 한글날(9일)을 맞이해 디지털 한글박물관 특별기획전 ‘한민족 일깨우다! 국어교과서 한 세기 특별전’(www.hangeulmuseum.org)을 연다. 근대 이후 우리말글을 교육하는 데 쓰였던 대표적인 국어 교과서 66종을 근대 계몽기, 일제 강점기, 건국기 및 교육 과정기의 세 시기로 나누어 보여준다.

 특히 교과서 삽화를 중심으로 한 기획전시가 눈길을 끈다. 삽화는 1895년 『신정심상소학(新訂尋常小學)』에 처음 실렸는데, 이후 시대별 특성을 반영했다. 일제 통감부검열기(1907~1910)에 나온 ‘보통학교학도용국어독본’의 1장 ‘국기’에선 태극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보인다. 강제병합(1910년) 이전부터 조선 침략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면 국기는 모두 일장기로 대체된다. 기차 같은 신문물을 강조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교과서에서 사라졌던 태극기는 해방 이후 다시 등장하고 가족·학교·이웃 등의 공동체를 강조하는 그림이 많다. 각 삽화에 이해를 돕는 전문가의 해제를 붙였다.

 특별기획전을 총괄한 서울대 민현식(국어교육과) 교수는 “일제 강점기 교과서는 의식적으로 국가 개념을 강조하고 민족의식을 억제했지만 정부 수립 이후 국정교과서에선 가족·이웃 등 공동체를 바탕으로 민족 정체성을 강화했다”며 “다문화 시대를 맞아 바람직한 교과서의 미래를 상상해보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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