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중국펀드 죽쑤는 이유 … 클 만하면 샹푸린이 ‘치즈’ 걷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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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김모씨는 해바라기가 해를 따르듯, 자신은 중국 증시만 바라보기 일쑤다. 골치덩어리 중국펀드 때문이다. 그가 중국펀드에 가입한 것은 2008년 초. “세계 투자 자금이 중국으로 몰리고 있다”는 증권사 광고를 보고 목돈을 부었다. 그러나 펀드 가치는 속절없이 떨어졌다. 3년 반이 지났건만 아직도 30% 가까운 손실을 보고 있다.

 경제 상황만 보자면 그의 펀드는 ‘대박’을 내야 했다. 중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뒤에도 9~10%의 성장세를 지속했다. 지난해 성장률은 10.3%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러나 주가그래프는 마냥 누워 있다. 팔고 나가고 싶어도 화려한 경제지표의 유혹을 떨칠 수 없었다. ‘경제 따로, 주가 따로’, 그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요인으로 ‘국가 정책’을 꼽는다. 주가가 오르면 국가가 시장에 나타나 돈을 빨아간다. 우유에 뜬 치즈 걷어가듯 말이다.

 첫 번째 ‘치즈 걷어가기’는 2005년 하반기 시작된 비(非)유통주 개혁이었다. 국가 소유의 비유통주를 시장에 풀되, 해당 상장사의 기존 주주에게는 손실 보전 차원에서 무상주(또는 현금)를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개혁 추진과 함께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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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6월 27일, 개혁을 주도한 샹푸린(尙福林) 증권감독위원장이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한 기자가 따져 물었다. “주식개혁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있습니다.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샹푸린의 대답은 간결했다. “카이궁메이요우휘토우젠(開弓沒有回頭箭)!”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뜻이었다.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개혁에 따라 비유통주에서 해제된 주식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린 게 2007년 말이었다. 2008년들어 해제 물량이 늘어나더니 그해 전체로는 약 3조2000억 위안(약 544조원)에 달했다. 시가총액(2007년 말 유통주 기준)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 2007년 10월 6000선을 뚫었던 상하이 종합지수는 1년여 만에 1700포인트까지 폭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국에선 중국펀드 열풍이 불었고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뒤이어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화를 키웠다.

 궈진(國金)증권의 시장분석가인 장샹(張翔)은 “2008년 폭락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비유통주 출하가 가장 컸다”며 “2009~2010년에도 그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장에 풀리는 물량은 많이 줄었지만 비유통주는 아직도 시장을 괴롭히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비유통주의 주인은 대부분 국유기업이다.

 두 번째 ‘치즈 걷어가기’는 2009년 하반기 시작됐다. 2008년 말 실시된 4조 위안 규모의 내수부양 조치로 상하이 주가는 반등하는 듯했다. 그러나 10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꺾였다. 이번에도 물량 폭탄이 문제였다. 중국 증권당국은 2008년 폭락기에 신규 기업공개(IPO)를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주가가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허용했다. 막았던 수문이 열리니 밀렸던 상장·증자가 봇물을 이뤘다. 2009년 하반기 증시 조달 자금이 약 5115억 위안에 달한다. 2010년에는 무려 9971억 위안의 물량이 쏟아졌다. 덕분에 홍콩·선전·상하이 등 중국 증시는 지난해 세계 IPO(금액기준) 순위에서 각각 1, 2, 4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주식 투자자들은 주가하락으로 골병이 들었다.

 중국 증시의 IPO는 증권감독위가 통제한다. 지역별·업종별·규모별 등으로 따져 허가한다. IPO 급증은 결국 정부의 뜻이라는 얘기다. 상장은 국유기업 위주로 진행된다. 중국 정부는 이를 두고 ‘민영화’라고 주장하지만, 투자가들은 ‘국가가 시장 돈을 저인망으로 긁어간다’고 원망한다.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은 “국가 말고도 치즈를 떠가는 또 다른 주체가 있다”고 말한다. 바로 기업의 종업원이다. 그는 “새롭게 성장하는 국가의 경우 기업 성장의 혜택이 투자자에까지 미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며 “중국의 노동자 임금이 최근 20% 안팎 급등하는 것은 기업 이익을 종업원들도 많이 가져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것저것 떼고 주식 투자자들이 기업 성장의 과실을 본격적으로 누리기까지는 앞으로도 5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중국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주가지수 3000포인트 관리설’이 넓게 퍼져 있다. 인허(銀河)증권의 수석분석가 친샤오빈(秦曉斌)은 “정부의 관심은 주가 올리기보다는 증시 체질 강화에 있다”며 “상하이 지수 3000포인트를 유지시키는 선에서 시장의 제도개선과 덩치키우기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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