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맞선과 면접이 똑같은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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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호 10면

면접은 소개팅이나 맞선 같다. 면접이 있는 날 아침에는 수염도 다듬고 넥타이도 이것저것 매보며 보통 때보다 외모에 더 신경을 쓴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들이 지원했을까? 서류 전형 때 사진과 프로필은 이미 봤지만 인터뷰 때 만나는 사람들은 서류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 회사, 부서에 지원한 사람들은 유능하고 인성도 훌륭할 것이다. 단정한 외모에 반듯하게 앉아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을 보는 건 면접관으로 참석한 이쪽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11년 전에는 나도 입사지원자의 신분으로 면접을 보았다. 아마 제대로 형식을 갖춘 면접이었다면 나는 입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도 눌변이지만 격식을 차린 자리에 가면 너무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횡설수설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상담실 원형테이블에서 준비해간 보고서와 제안서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보고서는 당시 일본의 최대 결혼정보회사였던 OMMG를 방문해 홍보실 책임자를 인터뷰한 것이었고, 제안서는 듀오가 앞으로 전개해야 할 광고 캠페인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 보면 논리는 성글고 주장은 거칠며 허세를 부린 티가 역력해서 낯이 화끈거릴 정도다. 어쨌든 간신히 나는 입사했다. 그리고 올챙이 적 시절은 까맣게 모르는 개구리 면접관이 되어 면접을 보고 있다.

면접은 소개팅이나 맞선 같다. 첫눈에 운명적인 사랑을 알아보는 경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드물다. 맞선도 한 번 만나서는 배우자감인지 어떤지 결정하기가 어렵다. 몇 번은 만나보고 또 일정 기간 교제를 해봐야 확신이 생기는 것 아닐까. 서류전형과 1차 실무면접, 2차 임원면접으로도 채용 여부를 결정하기 힘든 것 역시 같은 이유일 것이다.

지원자들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입사지원 동기를 말한다. 뛰어난 인재들로부터 지원동기를 듣는 일은 마치 근사한 이성에게 프러포즈를 받는 것처럼 가슴 벅차다. 프러포즈가 끝나면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된다. 면접 때 나는 질문을 별로 하지 않는다. 아니, 질문을 못 한다. 지원자보다 더 긴장해 있기 때문이다. 질문은 다른 면접관들이 한다. 면접관은 단지 대답만 듣기 위해 질문하는 것은 아니다.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정보로 사람을 선택하는 일인만큼 주어진 정보 외에 최대한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 사람의 여백을 찾아보려고 한다. 미처 서류에 적히지 못한 이력이나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말들, 긴장한 얼굴 뒤에 있을 다양한 표정들을 말이다. 언젠가 나는 경영자에게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지 물은 적이 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때 경영자는 이렇게 말했다.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사람을 뽑는다.”

면접은 소개팅이나 맞선 같다. 맞선을 볼 때는 상대가 배우자감으로 어울리는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면접 때 면접관이 지원자를 관찰하는 것처럼 지원자 역시 면접관을 관찰한다. 내가 다녀도 될 회사인지, 내가 따르고 함께 일할 만한 상사인지 어떤지 주의 깊게 살펴본다.

지난해 입사한 홍보팀 송원석 주임에게 면접 당시 내 첫인상을 물어봤다. 송 주임의 대답이 이랬다. “전 부장님이 관상 보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수염 기른 사람이 질문도 없이 제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길래.”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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