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궁궐 도시다. 조선시대 5개 궁궐 경복궁·창덕궁·창경궁·경희궁·경운궁이 있다. 이덕수 선생의
권기균의 과학과 문화 서울 5대 궁궐에 담긴 과학
조선의 법궁은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경복궁, 이궁은 태종이 지은 창덕궁이었다. 창경궁은 성종 때 지은 별궁이다. 창덕궁·창경궁은 경복궁 동쪽에 있어 동궐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은 모두 소실됐다. 피난에서 돌아온 선조는 16년간 정릉의 행궁에 머물다 승하했다. 뒤를 이은 광해군이 창덕궁을 재건했다. 이때부터 고종의 경복궁 재건 때까지 273년간 창덕궁이 법궁이었다.
성종은 1484년 9월 27일 창경궁을 완공했다. 세종이 즉위한 뒤 상왕 태종의 거처로 수강궁을 지었는데, 60년 후 그 자리에 성종이 자신의 할머니(세조의 비 정희왕후), 어머니(덕종의 비 소혜왕후), 작은 어머니(예종의 비 안순왕후)를 위해 별궁으로 새로 지었다.
전각의 용도와 역사·규모를 기록한
신영훈 선생의
우리 궁궐은 모두 목재 건축물에 기와집이다. 이 대목장 기술은 2010년 한국무형문화 대표 목록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목재는 소나무만 사용한다. 나이테가 좁고 속이 붉으며 목질이 단단한 적송을 쓴다. 궁궐 도편수 신응수 선생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생육조건이 좋지 않은 음지에서 더디게 자란 영동지방 소나무를 최고로 친다. 벌목도 수분 함유율이 적은 가을이나 겨울에 하고, 3년 이상 건조시켜 비틀림을 막는다. 궁궐은 처마가 깊다. 겹처마로 서까래 끝에 부연을 걸어 기둥 높이만큼 기둥선 밖으로 처마가 나오게 한다. 이것이 대낮의 햇볕을 가려준다. 그러나 어둡지 않다. 천장의 봉황까지 다 보인다. 마당에 떨어진 빛의 반사가 간접 조명을 만들기 때문이다.
1907년 이토 히로부미는 창경궁에 궐내각사를 헐고 식물원과 동물원을 만들었다. 궁문·담장·전각들도 헐고 잔디를 깔았다. 통명전 뒤 언덕에 일본식 건물을 세워 박물관 본관으로 삼았다. 1911년 창경궁 명칭도 창경원으로 바꿨다. 연못도 정자도 일본식으로 파고 세웠다. 1922년 벚꽃 수천 그루를 심고, 1924년부터 야간 벚꽃놀이를 개장했다.
창경궁 뒤의 서울국립과학관은 1927년 5월 옛 조선총독부 청사의 상설전시관이 시작이다. 1945년 해방 후 국립과학박물관으로, 49년 7월 국립과학관으로 개편됐다.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60년 8월 와룡동 현 위치를 건립 부지로 확정, 72년 9월 국립과학관의 문을 열었다. 73년 박정희 대통령은 창경궁에서 과학관 쪽으로 ‘과학문’을 만들었다. 그 서울과학관은 2014년이면 노원구 불암산으로 이전한다. 창경궁 복원 작업은 83년 시작돼 86년엔 이름도 창경원에서 창경궁으로 고쳤다. 그러나 동궐도(사진)의 창경궁을 보면, 창경궁 복원 작업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