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회계감사, 벤처 '거품' 만 키워

중앙일보

입력

인터넷 통신장비를 파는 벤처기업 A사는 회계장부를 엉터리로 만들었다가 최근 코스닥 등록이 좌절됐다.

朴모(38)사장은 "감사를 맡았던 회계사가 재고자산을 넉넉히 잡으면 이익이 늘어나 공모가를 높일 수 있다며 회계장부를 고쳤다" 고 말했다.

담당 회계사는 이 회사에 대한 감사수수료로 현금 대신 주식 5천주(0.625%)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A사의 장부를 검토한 D증권사는 "이익을 과대 포장한 것 같아 코스닥등록 주간사를 맡지 않겠다" 고 거절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재 이 회사의 코스닥시장 등록작업은 답보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사가 감사를 맡은 기업의 주식을 가질 수 있는 허술한 제도로 인해 일부 회계사가 주식을 받고 '봐주기식 감사' 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인회계사법에 따르면 회계사는 감사기업의 ▶주식 1%이내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은 무제한 받을 수 있다.

참여연대 윤종훈 회계사는 "일부 회계사가 주식을 받고 그 회사 주가를 띄우기 위해 무리수를 범할 수 있다" 며 "돈벌이를 위한 부실 감사는 '거품' 을 만들 우려가 크므로 감사인의 주식보유를 금지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올들어 현대.대우 등 5대 증권사가 코스닥 등록희망 벤처기업의 회계장부를 검토한 결과 심각한 문제점을 찾아내 주간사를 거절하는 경우가 10건 중 평균 3건을 넘고 있다.

하지만 감독당국의 손길은 미치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로부터 감사보고서를 감리받은 기업은 외부감사 대상(자산 70억원이상) 7천1백90개사 가운데 6.3%인 4백56개사에 그쳤다.

◇ 실태〓서울 강남에서 개인사무소를 하는 회계사 張모(41)씨. 지난해부터 대학 후배가 경영하는 벤처에 세무컨설팅을 하다 올해 감사까지 맡았다.

그동안 수수료로 주식 2천주와 스톡옵션 5천주(주당 1만원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받은 그는 지난달 증자 때 자금모집책 역할을 했다.

요새는 관계기관의 아는 사람들을 통해 코스닥 등록을 타진 중이다.

주주.자금담당.감사인에 로비스트까지 1인4역을 맡고 있다. 張씨는 "최근 경영진으로부터 코스닥 공모가를 5만원 이상으로 할 수 있는 재무제표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고 털어놓았다.

지난달 말 서울 강남 테헤란로 S투자클럽 객장에서 열린 B사 투자설명회. 회사 관계자는 "감사를 맡은 회계사도 사업내용이 좋아 주주로 참여했다" 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무제표를 살펴본 다른 회계사는 "껍데기에 불과한 회사를 그럴 듯한 기술개발을 내세워 포장했다" 며 "한마디로 어이없다" 고 말했다.

C증권 洪모차장은 "유사 창업투자회사나 브로커들이 기업주와 짜고 주가를 뻥튀기하는 곳에 내막을 모르고 참여했다가 이용당하는 회계사도 있다" 고 말했다.

◇ 왜 벤처인가〓회계사가 주식을 받는 현상은 코스닥 시장이 활성화된 지난해 가을이후 확산됐다.

현금이 부족한 벤처기업으로서는 주식으로 감사수수료를 치르는게 부담이 적다.

회계사 입장에서도 얼마 안되는 감사수수료를 받느니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주주가 된 회계사가 '잿밥' 에 관심이 많거나 악덕 기업주의 무리한 요구에 끌려 다니는 경우다.

회계사들은 "주식이나 스톡옵션을 받는 회계사가 많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지만 부실감사를 하는 등 물을 흐리는 경우는 극히 일부" 라고 말한다.

하지만 증권업계나 시민단체들은 "주주로 참여한 감사인과 벤처기업간에 묵시적 담합이 성행하고 있다" 고 말했다.

D증권 崔모부장은 "코스닥 생리를 잘 아는 일부 회계사가 주식을 받고 공모가를 올리기 위해 회계장부를 고친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고 지적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유태오 기획부장은 "극히 일부 회계사가 그럴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업주의 불순한 의도가 더 문제" 라는 반응을 보였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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