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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복구사업 ‘노다지’… 정상들, 총성 없는 전쟁 앞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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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호 07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16일(현지시간) 리비아를 방문해 트리폴리 공항에서 연설하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의 리비아 방문은 앞서 방문한 이집트·튀니지를 포함해 이른바 ‘아랍의 봄’ 지역에서 터키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트리폴리 AP=연합뉴스]

리비아를 겨냥한 전 세계 외교 전쟁이 뜨겁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나란히 15일(이하 현지시간) 리비아를 전격 방문한 데 이어 16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가 리비아를 찾았다. 영·프랑스 두 정상의 방문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엄밀히 말해 리비아에는 아직 공식 국가수반이 없는 상황이란 점에서 외교적으로 어색하다’고 꼬집었다.

전 세계 외교각축전 벌어지는 리비아

미국도 서두르고 있다. 백악관은 1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 무스타파 압델 잘릴 위원장을 20일 뉴욕 유엔총회에서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은 이날 카다피 정부 대신 NTC에 회원국 대표 지위를 부여했다. 또 카다피 정부를 겨냥해 리비아 주요 기업과 정부의 자산을 동결했던 조치도 해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공습 등 국제사회의 시민군 지원에 앞장서 온 사르코지 대통령과 캐머런 총리는 리비아에서 개선장군 혹은 록스타쯤 되는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두 정상은 리비아 시민들에게 화려한 찬사를 던졌다. 캐머런 총리는 “이 혁명은 우리의 것이 아닌 여러분의 것” “카다피는 여러분을 쥐 잡듯 사냥하겠다고 협박했지만 여러분이 보여준 것은 사자와 같은 용기” “지금은 ‘아랍의 봄’이 ‘아랍의 여름’이 될 수 있는 순간” 같은 화려한 표현을 쏟아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우리는 숨은 의도 없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다. 리비아를 돕고 싶었기 때문에 한 일”이라고 했다. 리비아 지원을 내년 프랑스 대선이나 리비아 석유와 관련 짓는 시각을 의식한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모든 아랍 세계를 향해 아주 분명히 말하겠다. 사전 협상이라던가 협약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리비아의 자산이나 자원에 대한 선점을 요구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초 프랑스 신문 리베라시옹은 리비아 시민군 측이 리비아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35%를 프랑스에 할당하기로 비밀리에 약속했다고 보도했으나 양쪽 모두 이를 부인한 바 있다.

두 정상의 리비아 방문에는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도 동행했다. 레비는 과거 보스니아 등에서 벌어진 대량학살이 리비아에서도 재연될 가능성을 제기하며 프랑스를 포함해 국제사회가 리비아 시민군 지원에 나서도록 사르코지를 설득했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언급은 역설적으로 현재 리비아에 대한 세계적 관심의 초점을 드러낸다. 리비아의 석유 매장량은 2007년 기준 세계 9위. 올 초 내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일일 생산량은 세계 17위였다. 리비아의 석유생산량은 전 세계 수요의 2% 정도지만 다른 지역에선 드문 고품질 경질유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특히 지중해를 사이에 둔 유럽엔 아주 중요한 나라다. 많게는 20% 이상을 리비아에서 도입해왔기 때문이다. 리비아의 석유생산 역시 이탈리아·영국·프랑스·스페인·오스트리아 등 유럽 회사들이 주도해왔다.

리비아 석유를 둘러싼 전 세계 각축전은 지난달 말 시민군이 트리폴리를 장악하면서 본격화됐다. 시민군 측 석유회사 아고코의 대변인은 지난달 22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탈리아·프랑스·영국 등 서방 국가 회사들과는 문제가 없다”며 “그러나 러시아·중국·브라질과는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친카다피 외교정책을 펴온 중국 같은 나라들은 올봄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기권하는 등 시민군 지원에 거리를 둬 왔다. 그러나 시민군 우세로 전황이 바뀌자 급히 NTC를 리비아의 공식대표로 인정하고 ‘포스트 카다피’ 외교전에 가세한 상태다.

이 외교전은 리비아의 또 다른 특징과도 맞물리며 전개되고 있다. 리비아는 지리적으로는 북아프리카, 종교로는 이슬람 문화권이다. 16일 리비아를 방문한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시민군 측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에 대한 감사를 받은 것은 물론이고 시민들과 함께 기도를 올리며 공감대를 과시했다.

리비아의 지정학적 특성을 살려 카다피는 한때 아랍권 연대를 주도하려다 여의치 않자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1990년대 말 아프리카연합(AU)의 결성을 주도하고 올 초까지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나이지리아·에티오피아 등 20개국은 개별적으로 NTC를 인정한 상태다. 그러나 54개국이 회원인 AU에서 나머지 나라는 아직 NTC를 공식 대표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AU의 고위급 위원회는 14일 남아공에 모여 논의를 벌였으나 ‘리비아에 거국적 통합정부가 수립되기를 촉구한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각국이 리비아를 겨냥해 총성 없는 외교전을 벌이는 사이 시민군과 카다피 세력 사이의 전투는 17일에도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와 바니 왈리드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카다피 측 대변인은 16일 시리아 TV와 전화연결을 통해 “우리는 이런 저항을 수개월간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 또 리비아를 방문한 영국·프랑스 정상에 대해 “그들은 열매를 모으러 서둘러 트리폴리에 온 것이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나눠달라고 할 게 겁이 났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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