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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 5일 요절한 테너 리치트라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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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호 05면

인사 없는 작별입니다. 이탈리아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가 5일 세상을 떠났죠. 불과 마흔 셋. 시칠리아 섬에서 스쿠터를 타던 중 벽을 들이받고 혼수 상태였습니다.이탈리아엔 노래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오페라의 발상지·종주국이기 때문이죠. 2007년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떠난 후 나라의 자존심을 이어주리라 기대했던 리치트라가 급서하자 이탈리아 국민의 실망이 큽니다. 이탈리아는 엔리코 카루소부터 주세페 디 스테파노 등 세계 최고 테너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죠.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하지만 3대 테너 중 도밍고·카레라스가 스페인 태생인 데서 알 수 있듯, 남쪽의 정열에 조금씩 영토를 내주는 형국이었습니다. 이어 차세대 스타들은 남미에서 대거 나왔습니다.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페루), 롤란도 비야존(멕시코), 호세 쿠라와 마르첼로 알바레스(아르헨티나) 등 스페인어를 쓰는 테너들의 침공이 이어졌죠. 그 소용돌이 가운데 리치트라가 단단한 몸집, 튼튼한 벨칸토 창법으로 이탈리아의 전통을 지켜왔던 겁니다.

리치트라는 200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파바로티 대신 푸치니 ‘토스카’에 출연했습니다. 준비된 카바라도시였죠.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조련됐던 이탈리아의 ‘보석’은 이렇게 세계 무대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오페라도 ‘토스카’였습니다. 5월 뉴욕에서 전막(全幕) 공연을 했고 7월엔 시카고 라비니아 페스티벌에서 ‘토스카’ 갈라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작품과의 묘한 인연이 보이는 듯합니다. 자신의 출세작이자 주특기로 생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셈이죠. 그것도 한창 무르익고 짙어진 40대 초반의 음성으로 말입니다.

아름다움은 비극 곁에 있을 때 더 빛나나 봅니다. 세월과 힘겹게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요절해버린 예술가들은 신비롭습니다. 톡 쏘는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남긴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서른 살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의 마지막 콘서트 앨범은 들을수록 아련합니다. 백혈병과 싸우던 33세 리파티는 계획했던 마지막 곡을 시작도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왔고 석 달 후 부음을 전했습니다.

거의 활동하지 못한 천재도 있습니다. 1945년 소련의 콩쿠르에서 리히터·로스트로포비치와 나란히 우승했던 유리안 시트코베츠키는 음반도 몇 장 남기지 않은 채 서른셋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에선 더욱 구하기 힘든 앨범 대신 유튜브에서라도 열심히 그를 찾아 만나봅니다. 팽팽한 젊음을 잔뜩 묻힌 연주가 청중을 설레게 하죠.

리치트라는 장기 기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합니다. 간과 신장을 기증해 세 명을 살려냈죠. 이처럼 그는 또 다른 방법으로 영원한 청년에 머물게 됐습니다. 여러 생각이 드는 소식을 전하며 리치트라가 부르는 ‘토스카’ 카바라도시의 노래 ‘별이 빛나건만’을 권합니다.

A 이탈리아 전통 지킨 보석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기자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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