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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68세대 조롱한 우엘벡, 이번엔 현실에 칼을 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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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문학동네
520쪽, 1만4800원

먼저 『소립자』 얘기를 안 할 수 없겠다.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이 1998년 발표한 이 소설은 당시 프랑스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우엘벡 신드롬’ 속에 열렬한 찬사와 격렬한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소립자』는 한 문예지에 의해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된 반면,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에는 아예 후보조차 되지 못했다.

미셸 우엘벡

 우엘벡은 『소립자』에서 프랑스의 ‘68세대’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68세대가 누구인가. 자유와 평등과 해방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젊음과 혁명의 영원한 상징이자 20세기 후반 서구사회의 정신적 근간이 된 ‘전설의 신세대’ 아니던가. 우엘벡은 최고의 가치가 된 대상의 치부와 폐해를 가차 없이 까발린다. 형제인 두 주인공의 황폐한 삶과 끝없는 절망은 독자를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소설은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면 인류는 차라리 멸망하는 게 낫다’는 과격한 결말에까지 이른다.

 우엘벡은 뜨겁다. 과하고 극단적이고 지독하다. 그런 한편 우엘벡은 차갑다. 냉정하고 집요하고 철저하다. 너무나도 상반되는 매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정도가 아니라 강력한 토네이도처럼 회오리 친다.

그런 우엘벡이 지난해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수상작이 『지도와 영토』다. 우엘벡은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차갑다. 그러나 그 뜨거움은 번개의 번쩍임에서 용암의 들끓음으로, 그 차가움은 뱀의 비늘에서 만년설의 크레바스로 변화를 겪은 듯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화가인 제드 마르탱이다. 그는 지도를 촬영한 사진 작품으로, 다양한 직업의 인물을 그린 회화 작품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우엘벡은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현대사회의 복잡다단한 세태를 사진처럼 명확하게 때로 회화처럼 치밀하게 재현한다. 제드 마르탱 역시 우엘벡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처럼 고독하고 괴팍한 외톨이며, 진정한 사랑을 놓치고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인물이다. 이번 소설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런 주인공 앞에 작가 미셸 우엘벡이 작품 속 인물로 ‘직접’ 등장한다는 것이다.

우엘벡만이 아니다. 『지도와 영토』에는 현존하는 프랑스의 유명인사가 대거 등장한다. 현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뒤섞이며 그들은 블랙유머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객체가 되기도 한다. 실존 인물을 소설 속에 등장시킨 파격적인 설정은 그러나 그저 신기한 효과를 노려본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소설의 후반부 우엘벡이 그려낸 또 다른 파격은 독자에게 서늘한 충격을 선사한다. 결코 감상이 아닌 연민의 긴 여운이 뒤를 잇는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 ‘역시’ 우엘벡이다. 『지도와 영토』는 우엘벡이 소설로 완성한 21세기 첫 10년에 대한 차갑고 정교한 보고서이자, 작가 자신의 뜨겁고 아방가르드한 자화상이다.

이신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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