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이창호, 불가피한 살(殺)의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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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본선 32강전>
○·이창호 9단 ●·쑨리 5단

제7보(69~74)=쑨리의 흑▲는 좌변 두 점 정도는 포기하겠다는 의사 표시다. 하변 백을 다 잡은 쑨리 5단은 지금 배부른 흥정을 하고 있다. 이창호 9단은 68로 웅크린다. 소극적인 수는 아니다. 오히려 좌상 방면을 확실하게 굳히면서 총공격을 보고 있다. 쑨리가 다음 착점을 망설이고 있다. 검토실에선 정답이 이미 나와 있다. 바로 ‘참고도1’ 흑1의 두 칸. 백2로 잡는다면 흑3으로 막아 우변 일대가 검은 바다로 변한다. “이건 백이 도저히 안 되는 그림입니다”라고 박영훈 9단은 말한다.

 따라서 백도 ‘참고도2’ 백2를 선수한 다음 4로 공격할 것이다. 우변 흑진부터 견제하며 A로 잡는 수는 아주 나중에 둘 것이다. 한데 쑨리 5단은 놀랍게도 69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흑▲를 둘 때의 여유가 왜 사나움으로 돌변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젊으니까 ‘살 자신이 있는데 왜 도망치나’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부에선 자신이 있더라도 피할 때는 피해야 한다. 상대를 너무 궁지로 몰아넣는 것은 위험하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 하물며 이창호 같은 고수로 하여금 배수진을 치게 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백70. 단도직입적인 살수다. 71에 72도 마찬가지. 이창호 9단은 일직선으로 흑 대마를 잡으러 가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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