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벤처' 기술력 하나로 해외시장 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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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소재.인터넷 관련 기술 등으로 무장한 신생 기술 벤처기업들이 수출 길을 개척하고 있다.

외환위기 전후에 설립된 이들 기업은 세계 특허 등 신기술을 앞세워 비싼 가격을 고수하거나 환율변동에 따라 수출가를 조정하는 등 새로운 수출 관행을 만들고 있다.

아직 설비가 부족해 수주 물량을 소화하기 어려운 기업도 있지만 기술력으로 세계무대에 도전하고 있다.

규사.백시멘트로 만든 무기질 도료를 개발해 21일 한국기술특허(KT마크)를 딴 세라켐은 아직 공장 설비를 완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달 중국 선양(瀋陽)에서 40t의 주문을 받았다.

유럽 건자재 메이저 배급업체인 폴란드 HCI사, 프랑스 칼톤사와도 장기 계약이 성사 단계다.

기존 무기질 도료의 부착력이 약한 단점을 극복하고 통기성도 좋아 수영장에 칠해도 벗겨지지 않는 게 강점.

가격은 ㎏당 5달러선으로 일반 페인트(2달러)보다 두배 이상 비싸지만 미국.일본 등지에서도 샘플을 보내달라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설립한 이 회사는 사장을 포함해 직원이 11명인 소기업. 그러나 삼성물산이 벌크선 단위로 계약해온 관행을 깨고 처음으로 과장급 전담자까지 배치하면서 소량 수출을 대행하겠다고 나섰다.

삼성물산 한상욱 과장은 "생산능력이 적어 올해 수출은 1천만달러를 계획하고 있지만, 경쟁자가 없는 기술이어서 설비만 증설하면 세계 건자재 시장을 제패할 수 있다" 고 말했다.

컴퓨터.이동통신 부품을 만드는 일산일렉콤은 지난해 매출(5백30억원)의 73%인 4백억원을 해외에서 벌었다.

주 생산품은 컴퓨터 전원공급장치(SMPS)인데 최근 이동통신 커넥터를 국산화하고 초고속인터넷망 장비와 전자파 흡수 소재를 개발해 1997년부터 신기술 상품을 수출했다.

커넥터 등 신기술 부품은 수출 마진이 30~40% 정도로 채산성이 높아 중소기업청이 선정한 올 1분기 벤처기업인상을 받았다.

일산일렉콤 관계자는 "커넥터나 초고속통신망 장비 등을 수출하면서 환율에 연동해 가격을 조정하도록 계약해 채산성을 유지하고 있다" 며 "꼭 사야 하는 상품은 바이어들도 가격에 관계없이 주문한다" 고 말했다.

시원테크는 삐삐 크기만한 MP3플레이어로 회사설립 1년만에 동남아와 미국에 월 10억원 어치씩 연간 수출계약을 하고 1차 선적을 끝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 마이애미 MP3쇼, 라스베이거스 컴덱스 등 주로 박람회를 통해 수주에 나섰고, 마이애미쇼에서 최고 인기품목으로 뽑히면서 수출 길을 텄다.

아직 생산설비가 완비되지 않아 주문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원테크 김상국 사장은 "다른 제품보다 10~20% 정도 비싼 가격을 책정해 깎아주지 않는 전략을 썼다" 며 "처음 깎으려던 바이어들이 요즘엔 아예 가격 문제는 우리에게 맡기면서 상담하고 있다" 고 말했다.

온라인 애니메이션 배급업체인 앤웍스는 최근 미국의 애니메이션 배급업체로부터 25억원 상당의 만화제작 주문을 받았는데 아직 제작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승낙하지 않은 상태.

앤웍스는 최근 중국 선양에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를 설립하는 등 수출 채비를 갖추고 있다.

삼성물산 벤처투자팀인 골든게이트가 투자해 관심을 모은 3차원 인터넷 커뮤니티회사인 오즈인터미디어도 일본 등에 라이선스 수출을 위한 상담을 진행 중이다.

이밖에도 수출에 주력하는 신생 기술 벤처기업들은 미국.중국 등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하거나 현대상사.삼성물산 등 대형 종합상사와 제휴해 해외 마케팅을 맡기고 있다.

한국기술투자금융(KTIC)은 자체 투자한 벤처기업 10여개사를 함께 묶어 공동 마케팅을 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 밸리에 사무소를 냈다.

KTIC 유원희 이사는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수출 의지가 강하지만 마케팅 능력이 취약해 이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고 말했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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