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스마일 에니스, 미소 실종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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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에니스가 800m를 마친 뒤 은메달이 확정되자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대구AP=연합뉴스]

체르노바

이변의 연속인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7종 경기에서도 예상 밖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떠오르는 별’ 타티야나 체르노바(23·러시아)가 30일 끝난 7종 경기에서 총 6880점을 얻어 강력한 우승 후보 제시카 에니스(25·영국·6751점)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에니스는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2010년 세계실내선수권과 유럽선수권에서 연거푸 금메달을 딴 7종 경기의 절대 강자다. 체르노바는 2010년 세계실내선수권과 유럽선수권에서 각각 3위와 4위에 그쳤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이 최고 성적이었다.

 키 1m89㎝, 몸무게 63㎏의 체르노바는 어려서부터 트랙과 필드 종목에서 모두 재능을 보였다. 세계유스선수권(2005년)과 세계주니어선수권(2006년)에서 우승하며 주니어 무대를 평정한 체르노바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동메달로 성인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올해 6월 개인 최고인 6773점을 세우며 기분 좋게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대구에서 그는 개인 최고 기록을 또 경신하며 자신의 재능을 뽐냈다. 체르노바는 첫째 날 100m 허들(13초32), 포환던지기(14m17), 200m(23초50)에서 모두 자신의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네 번째 종목 200m에서 전체 2위를 차지하며 종합 점수에서도 에니스에 이어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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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에는 첫 종목인 멀리뛰기에서 6m61로 출전 선수 중 가장 멀리 뛰어 에니스와의 점수 차를 줄였다. 그리고 창던지기에서 52m95로 참가자 중 세 번째 좋은 기록을 내며 에니스를 넘어 1위로 올라섰다. 마지막 800m에서 에니스에 이어 3위로 들어왔지만 금메달은 그의 차지였다.

 2회 연속 우승을 노리던 ‘미스 스마일’ 에니스는 창던지기 한 종목에서 삐긋하는 바람에 은메달에 그쳤다. 작은 키(1m65㎝)에도 타고난 운동능력으로 경쟁자들을 압도해 왔던 에니스는 29일 열린 네 종목에서 4078점으로 중간 합계 1위에 오르며 순항했다. 100m 허들에서는 12초94의 시즌 최고 기록을 세웠다. 30일 열린 이틀째 첫 번째 종목인 멀리뛰기에서도 개인 최고 기록 타이인 6m51을 뛰어 1010점을 보탰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했던 그의 말대로 종목별 기록이 고루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메달 전선에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필드 종목에 약한 에니스는 창던지기에서 고개를 떨궜다. 세 차례 시도에서 39m95에 그쳤다. 자신의 최고 기록(46m71)에 한참 못 미쳤고, 추격자 체르노바보다 무려 13m나 뒤진 기록이었다. 항상 미소를 머금던 에니스는 두 손을 머리에 올린 채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결국 총점에서 체르노바에 118점 앞서가던 에니스는 도리어 133점 차로 역전당했다. 한 종목에서 무려 251점을 까먹는 바람에 마지막 남은 800m에서 자신의 최고기록(2분07초81)을 세웠지만 재역전하기에는 벅찼다.

대구=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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