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 확신 흔들리면 구경제로 추락

중앙일보

입력

지난주 월요일 토머스 펜필드 잭슨 연방법원 판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술 경쟁을 저해하는 약탈적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수요일, 백악관은 생활수준 향상과 경기순환 법칙이 깨진(호황의 지속) 것도 어쩌면 신경제의 원동력인 기술발전의 덕이라고 찬양한 회의를 주재했다. 그동안 주가는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주의깊게 살펴봐야 할 연관성과 모순이 있다.

백악관 회의에 초대된 패널리스트 중에는 빌 게이츠도 있었다. 그가 초대받은 이유는 잭슨 판사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그가 기업 깡패이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처럼 경쟁을 저해하는 괴물이라면 어떻게 신경제가 경쟁력 강화를 통해 효율성 향상과 인플레 억제를 가져올 수 있었겠는가.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최근의 한 보고서에서 W. 마이클 콕스와 리처드 암은 컴퓨터 혁명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다음은 1990∼99년 사이의 변화다.
미국의 PC 보유가구 비율이 22%에서 53%로 증가.
미국의 연간 PC 판매량은 9백만 대에서 4천3백만 대로 증가.
인터넷 연결 가구 비율이 0%에서 38%로 증가.
전세계의 총 웹 사이트 수는 31만3천 개에서 5천6백만 개로 증가.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의 매출액은 6백30억 달러에서 1천4백10억 달러로 증가.

PC의 90% 정도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분리해 생각하기는 어렵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적인 공헌은 표준화였다. 덕택에 다른 운영체제를 위한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

소프트웨어 시장은 확대됐고 프로그램 개발의 수익성도 향상됐다. 컴퓨터 네트워크도 더 쉽게 구축할 수 있었다. 한 회사에서 컴퓨터 기술을 배운 사람이 회사를 옮겨도 그 기술을 썩일 염려가 없었다.

표준화가 컴퓨터 혁명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가치가 상당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윈텔’(윈도와 인텔 칩) 컴퓨터가 그렇게 보편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잭슨 판사도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운영체제 시장에 대한 사실상의 독점체제를 불법적으로 구축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마이크로소프트 소송이 제기하는 본질적인 문제는 반독점법이 기술경쟁에 적합한 것이냐는 점이다. 1890년 이번 소송의 근거가 된 셔먼 반독점법이 통과될 당시만 해도 독점세력의 폐해는 명백해 보였다. 경쟁은 가격경쟁을 의미했다. 반독점법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경쟁은 동일제품의 가격경쟁이 아니라 경쟁기술의 우위경쟁이다. 케이블 TV는 위성 TV와 경쟁하고, 무선통신은 유선통신과 경쟁한다. 리눅스 운영체제는 윈도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대다수 기술의 경우 표준이 사활을 좌우한다. 표준이 없으면 대량시장의 형성은 불가능하다. 기업간의 자발적인 합의로 표준이 이뤄지는가 하면 때로는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한두 기업에 의해 형성되기도 한다. 그런 독점에 견제가 존재한다면 바로 신기술의 위협이다.

잭슨 판사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 지배력 때문에 소프트웨어의 소비자 가격이 올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텍사스大(댈러스)의 스탠리 라이보위츠와 노스 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스티븐 마골리스는 근저(近著)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가격인하를 불러왔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한다.

잭슨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브라우저 경쟁에서 라이벌 넷스케이프를 따돌리기 위해 강압전술을 구사했다고 밝혔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에 소프트웨어를 의존하는 PC 메이커들은 강압에 의해 넷스케이프 대신 익스플로러를 채택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익스플로러가 넷스케이프보다 질이 떨어진다거나 인터넷의 성장이 저해됐다는 얘기는 없었다. 아직 마이크로소프트가 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넷스케이프가 아직도 시장의 29%를 차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무선 인터넷 접속장치를 위한 소프트웨어 출시에서도 선수를 빼앗겼다.

잭슨의 결정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공익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듯하다. 지난주 한 여론조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소비자들에게 ‘유익했다’는 응답이 67%였지만 ‘해로웠다’는 답변은 8%에 불과했다. 반독점법이 기술경쟁에 적합하게 재편될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재편해야 할지에 관한 문제가 바로 지난주 백악관 회의에서 논의됐어야 했다. 물론 그 회의는 신경제의 논란거리를 검토하자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반면 그 자리의 축하 무드는 한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신경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주로 심리상태인 것 같다. 다시 말해 경이로운 기술발전을 통해 경제가 끝없는 호황에 들어섰다는 확신이다. 그와 같은 ‘超확신’ 그 자체가 경제의 행태를 바꿈으로써 주식시장의 활황과 소비지출 증대를 가져온 것이다. 미래는 두려워 하거나 심지어 근검절약할 필요조차 별로 없어 보일 정도로 밝아 보인다. 지난주 증시의 반등은 그런 확신을 반영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취약점이 있다. 만일 어떤 이유로 그런 초확신이 흔들린다면 주가와 소비 지출이 반락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신경제도 구경제처럼 보이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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