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출신 연예인 전철우·김혜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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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하자 북녘이 고향인 전철우(34)와 김혜영(25)도 가슴이 설레긴 마찬가지다.각각 평안도 강서와 함경도 청진이 고향인 이들에게 진달래와 개나리가 만발한 '고향의 봄'이 왜 그립지 않겠는가.

더욱이 전철우는 구동독 유학생 신분으로 단독 귀순한 지 벌써 11년째.지난 2월에는 경희대 무용과 출신의 김호은(27)씨와 결혼,가정을 이루었지만 고향에 두고온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을 적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2년전에 귀순한 김혜영은 전철우와 달리 가족이 있어 그나마 외로움은 덜한 편이다.

평소 오누이처럼 지내는 두 사람은 귀순자라는 점외에 남한의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위 '북한출신 연예인'이란 공통점이 있다.전철우는 코미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이젠 방송인·사업가로 다방면에서 활동 중.반면 SBS의 '덕이'등에 출연하는 김혜영은 CF모델·배우·가수 등으로 점차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꿈나무'다.

이런 배경 때문에 두 사람은 앞으로 활발해질 남북 문화의 교류사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양쪽의 문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잘 아는 두 사람의 중재역할이 그 만큼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막중한 의무감 때문인지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그 수준을 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특히 김일성·김정일의 우상화 색채가 덜한 작품의 경우 북한예술의 수준이 남한의 그것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두 사람의 공통된 평가다.

김혜영은 영화 '서편제’와 북한영화 '달매와 범달이’를 통해 그 차이점을 설명한다.

"얼마전 북한에서 꽤 인기있던 '달매와 범달이’이라는 영화를 남한의 대학생들과 함께 본 적이 었어요.고구려시대 이야기인데 '저걸 영화라고 만들었냐’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어요.저는 그런 시각이 잘못됐다고 보지는 않아요.사실 '서편제’를 보고 왜 좋은 영화인지 저도 이해를 못했어요.북한에서 판소리같은 음악은 너무나 낯설거든요.”

전철우는 이런 차이를 '습관’이란 말로 요약했다.“예술은 습관입니다.얼마나 익숙해있느냐의 문제지요.제 아내가 경희대에서 한국무용을 배웠는데 그곳은 최승희 무용의 전통이 있습니다.김백봉(김씨는 최승희와 동서지간이다)의 '부채춤’의 경우가 대표적인데,아내가 그걸 추는 걸 보고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릅니다.북한에서 그처럼 정적이며 느린 춤사위는 찾을 수 없거든요.”

두 사람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는 '대중가요’라는 단어는 없다고 한다.그저 '노래’라는 말만 있을 뿐이다.그 노래를 향유하는 계층 또한 남녀노소를 막론한다.철저히 세대별 특화가 이뤄지고 있는 남한과는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전철우의 말.

"15년전 '춘향전'을 각색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사랑 사랑 내사랑’이 큰 인기를 끌면서 동명 타이틀곡이 유행했어요.이처럼 인기있는 노래는 노동신문 등 일간지에 가사와 악보가 함께 실리는 데 누구나 할 것없이 그걸 오려가지고 다니면서 외우곤 하지요.”

옛 문헌에 우리 민족을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묘사했다는데 이런 걸 보면 그런 유전자는 이념의 차이조차 허무는 모양이다.전씨에 따르면 북한의 노래는 주로 노동현장의 생산력을 높이는 노동요(勞動謠)구실을 하며,이로 인해 민요풍의 노래조차도 빠르고 힘 있고 경쾌한 게 특징이라고 한다.남한에 소개된 바 있는 '휘파람’'반갑습니다’등도 예외가 아니다.

공학도였던 전철우와 달리 김혜영은 북한에서도 제대로 예능 공부를 한 실력파.경쟁률이 1천대 1이나 되는 4년제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연기를 배웠다.청진사범대학에서는 성악을 공부했다.

"남한처럼 북한에서도 연예인이 최고의 직업으로 꼽힙니다.주로 당간부의 자식들이 선호해 평양연극영화학교의 경우 70∼80%가 이들입니다.졸업하면 주로 조선예술영화촬영소나 2·8예술영화촬영소(주로 군영화 촬영) 등에서 활동하지요.지방에는 '선전대’라고 해서 따로 있습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북한에는 인민·공훈예술인이 있다.남한 방송에 소개된 '임꺽정’의 주인공인 최창수와 김정화,북한의 화폐에도 얼굴이 찍혀있는 엄길선·홍영희,'도라지꽃’의 오미란 등이 대표적인 인민배우.김혜영은 "노래면 노래,연기면 연기로 활동범위가 특화돼 있는 게 북한 대중예술계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남한의 대중예술을 경험한 입장에서 두 사람은 충고에도 인색하지 않았다.전철우는 “노골적인 상업성”을,김혜영은 "미국문화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지적했다.

"북한예술은 다양성은 없지만 다같이 즐기는 예술을 지향합니다.그러나 남한은 서구문화의 획일성에 동화돼 10대들 문화만이 판을 치는 것 같아요.이런 풍토가 바뀌어야 바람직한 방향에서 남북한의 문화교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전철우는 "이제 제발 방송에서 신파적인 톤으로 '종간나새끼' 운운하는 식의 왜곡된 용어 사용은 금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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