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뒷거래 의혹 곽노현 교육감 사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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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총 2억원을 지원했다”고 털어놨다. 박 교수는 지난해 교육감 선거에 나섰다가 막판에 곽 교육감에게 이른바 진보진영 단일화라는 이름 아래 후보를 양보한 인물이다. 곽 교육감은 “딱한 사정을 보고 선의에 입각한 돈”이라고 돈의 성격을 규정했다.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밀실거래 의혹은 전면 부인했다. 그는 “박 교수의 결단에 의해 이뤄진 것이고 대가에 관한 어떤 약속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경쟁자에게 후보 자리를 내준 사람에게 몰래 거액을 건넸는데도 ‘선의(善意)’이니 그대로 믿으라고 했다.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해 돈을 대가성이 없는 선의로 포장한 궤변(詭辯)의 논리다.

 곽 교육감은 비리로 몰락한 공정택 전 교육감과의 차별성과 도덕성을 앞세워 당선됐다. 당선 직후 “부패와 비리가 기생하는 음습한 밀실 교육행정·학교행정을 청산하겠다”며 ‘깨끗한 교육혁명’을 다짐했다. 겉으론 개혁을 얘기하면서 뒤에선 구린 냄새를 피운 것이다. 그는 “박 교수의 경제적 어려움을 모른 척할 수 없어 친한 친구를 통해 돈을 전달했다”고 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 전후 금전·물품 기타 재산상 이익의 제공, 이익 제공의 의사표시 또는 그 제공을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2006년 한창희 당시 충주시장은 출입기자 2명에게 각각 20만원의 촌지를 건넨 혐의로 기소돼 시장직을 잃었다. 사전선거운동이며 ‘기부행위 상시 금지’를 규정한 법을 위반한 것이다. 곽 교육감은 선거 후보자에게 1만원짜리 설렁탕 한 그릇을 얻어먹었다가 50배의 과태료를 물었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는가. 하물며 억대의 돈 거래를 순수하게 봐달라는 게 법 상식과 국민 정서에 맞겠는가. 그는 또 “분별없이 보면 법은 왜곡되거나 혼탁하게 된다”며 “합법성만 강조하고 인정을 무시하면 몰인정한 사회가 된다”는 희한한 법 논리를 끌어들였다. 법학자이자 교육자라는 사람이 법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착각하고 있다.

 서울시교육감은 한 해 6조원이 넘는 예산을 주무르고 5만5000여 교원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막강한 직책이다. 그럴수록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되고, 국민의 사표(師表)가 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곽 교육감은 부적격자다. 도덕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게 학부모와 학생에 대한 도리다.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위법의 담벼락 위를 곡예하는 교육감을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도의적 책임과 별도로 2억원의 출처를 포함한 수사는 철저히 진행돼야 한다. 어제 검찰은 박 교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단일화에 합의해 준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다. 곽 교육감 측이 박 교수에게 ‘기탁금 5000만원+∝’를 약속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한다. ‘돈+자문위원장 보장+서울교대 총장 선거 지원’이 단일화 조건이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곽 교육감은 ‘표적수사’와 ‘선의’라는 가당치 않은 논리로 법망을 회피하려는 꼼수를 버리고 검찰 수사에 응하길 바란다. 그게 교육자적 양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