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막는 백신, 5~6년 뒤 나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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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호 18면

세상 일을 훤히 꿰뚫는 박학다식한 사람도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위험한 상황은 눈치채지 못한다. 소리 없이 찾아오는 ‘기억의 살인자’, 노년의 삶과 품위를 짓밟는 무서운 복병. 바로 치매다.

한림대병원 신경과 유경호 교수가 말하는 치매 예방과 대처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치매 유병률은 10명 중 한 명꼴(65세 이상). 그것도 매년 급격히 늘고 있다. 특히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코앞에 두고 치매에 대한 공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다행히 치매는 조기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고 악화되는 시간을 늦출 수 있다. 하지만 조기 발견을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은 소수다. 최근 한국형 치매 진단 프로그램을 만든 한림대성심병원의 핵심 멤버 유경호(신경과·사진) 교수를 만나 치매에 대한 궁금증을 풀었다.

-노년 인구의 10명 중 1명이 치매다. 왜 이렇게 많은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고령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치매의 가장 흔한 유형인 알츠하이머병은 퇴행성 질환, 즉 몸이 늙으면서 생기는 질환이다. 알츠하이머병은 뇌 안에 베타아밀로이드 같은 비정상적인 단백질이 응축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신경섬유와 노폐물 등이 엉켜 생긴 응축물질이 신경세포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뇌신경 전달물질을 받아들이는 기능이 감소하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비정상적인 응축물질이 주로 쌓이는 곳은 기억을 담당하는 핵심 부위인 해마다. 질병이 진행되면 뇌의 다른 부위에도 이런 물질이 쌓인다.

치매 증상이 나타날 만큼의 응축물질이 쌓이는 시기는 보통 60~70세 이후다. 일반적으로 65세 이후부터 치매에 걸릴 확률은 두 배씩 증가해 85세를 넘으면 10명 중 3명꼴로 치매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85세 이상 인구의 47%가 치매 환자로 조사된 바 있다.”

-치매에 잘 걸리는 사람이 따로 있나.
“유전이나 음식 섭취 등 치매 원인을 밝혀낸 명확한 연구 결과는 없다. 하지만 가족력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부모가 알츠하이머병을 앓았다면 자녀가 노년기에 발병할 가능성은 두 배 정도 높다. 아포지단백4형이라는 유전자와 관련 있는데, 이 유전자형이 1개 있으면 2.7배, 2개 있으면 17.4배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포지단백4형이 있다고 반드시 알츠하이머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며 발병 위험이 조금 더 높다는 정도로 봐야 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알츠하이머병 유병률이 더 높지만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기보다는 여자가 더 오래 살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 신경세포가 죽어 치매로 연결될 수 있다는 학설이 있지만 아직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혈관성 치매는 다르다. 전체 치매의 30~40%를 차지하는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이 파괴돼 주변 뇌세포가 사멸돼 생긴다. 원인이 명확하므로 예방이 가능하다. 뇌혈관 질환의 가족력이 있거나 비만한 사람, 흡연·음주를 즐기는 사람은 미리 뇌혈관 촬영을 해 보면 예방 가능하다.”

-증상이 어떤가. 기억력이 나빠지면 치매의 초기 단계인가.
“건망증과 치매는 조금 다르다. 어떤 것이 기억 안 나다가도 ‘무엇무엇 있잖아’ 하는 힌트를 줘 생각나면 치매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건망증은 뇌신경 전달물질 교환이 빨리 이뤄지지 않아 생긴다. 치매는 뇌의 일부 세포가 죽어 생기기 때문에 건망증보다 심한 기억 장애가 나타난다. 치매가 있으면 건망증이 나타나지만 건망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치매는 아니다. 치매는 기억력 장애와 언어·행동 이상, 성격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검사를 언제부터 받아 보면 되나.
“기억력 장애가 심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CARDS’라는 한국형 컴퓨터 치매 진단을 받아 보면 좋다. 총 31개의 항목을 화면의 지시에 따라 검사하면 컴퓨터에서 분석해 치매 진단 여부를 알려 준다.

좀 더 정밀한 검사를 원한다면 MRA를 찍어 보는 게 좋다. 보통 MRI를 찍으면 뇌세포의 변성 부분만 보여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혈관성 치매를 정확히 진단할 수 없다. 따라서 뇌 혈관의 상태까지 볼 수 있는 MRA를 찍어 보는 게 좋다. 부모나 친척 중 치매가 있는 사람, 당뇨·고혈압·비만이 있으면서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50대 이상에서 검사를 받아 보면 좋다.”

-치료를 빨리할수록 좋나.
“그렇다. 혈관성 치매는 조기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뇌혈관이 망가져 주변 세포를 파괴하는 것이므로 사전에 혈관 이상을 잡아내면 치매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 약물을 써 치료하면 완치도 가능하다. 파괴된 혈관 주변 새로운 혈관들이 생겨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반면 알츠하이머병은 그렇지 않다. 이미 뇌세포가 파괴된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다만 병의 진행 속
도를 조금 늦춰 줄 수는 있다. 알츠하이머병에 약물 치료를 하면 증상의 진행을 상당 부분 늦출 수 있다.

아세트콜린 분해억제제 등 신경 전달을 조절하는 약물을 쓴다. 기억력에 관여하는 아세트콜린이 분해되는 것을 막아 인지 기능을 최대한 유지시킬 수 있다.”

-예방 백신이 개발되고 있다는데.
“알츠하이머병은 지금으로서는 완전히 막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예방 백신이 개발 중이어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일으키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활동을 막는 백신이 임상시험 중이다. 뇌에 침착되는 아밀로이드 양을 줄여 이미 침착된 것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됐다. 5~6년쯤 지나면 상용화되지 않을까 싶다. 혈관성 치매를 막기 위해서는 금연과 절주, 규칙적인 운동을 실천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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