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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KDI '공무원연금제도 구조개선 방안' 단독입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류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사실상 파산상태에 돌입한 공무원연금.

연금제도 개혁안도 나와 있다. “월간중앙”이 입수한 한국개발연구원의 개혁안 보고서는 즉각적인 수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해마다 1조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붓겠다는 식이다.

■연금기금 고갈된 올해, 정부는 1조원을 쏟아붇는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
■1999년 8월 작성된 개혁안, 행자부 발표 못하는 속사정
■기득권세력 “KDI 폭파시키겠다”고 전화로 협박하며 맹렬히 저항
■연금 정책담당자들은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모순을 떠넘기고 있다

공무원연금이 바닥났다.
100만 공무원의 박봉에서 매달 ‘퇴직후 보험’ 성격으로 7.5%씩 떼어내 관리해온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금고가 텅텅 비게 됐다. 1998년부터 조단위로 수지적자가 계속되는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는 적립기금이 한푼도 남지 않는 그야말로 기금 고갈의 ‘원년’으로 기록될 것 같다.

사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에 시달려온 공무원연금은 ‘적립기금’으로 적자를 메웠다. 쌓아둔 돈을 털어 퇴직 공무원들에게 연금을 줘왔던 것이다.

그러나 올해 드디어 그 적립기금조차 메마르게 됐다. 오갈 데 없는 파산상태다. 그렇다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현행 공무원연금제도를 수술하지 않고 구멍난 부분을 계속 예산으로 ‘땜질’해 나가겠다는 태도다. 그게 다 국민 세금이다. 결국 퇴직 공무원들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 국민들 허리만 휘어지게 생겼다.

정부의 처방은 수술 환자에게 반창고를 붙이는 격이다. 그나마 땜질로 버틸 수만 있다면 다행이다. 불행하게도 조만간 땜질식 처방으로도 수습할 수 없는 사태가 도래할 것이다.

공무원연금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할 경우, 기금이 고갈된 올해부터 정부가 공무원연금의 적자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부도 엄청난 재정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천상 세금을 더 걷는 수밖에 없다. 2001년 자그마치 1조4,550억원을 메워야 하고, 매년 그 액수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날 전망이다.

현 추세대로 가면 ▷2010년에는 적자폭이 5조9,500원 ▷2015년에는 14조1,740억원 ▷2020년에는 31조1,670억원 ▷2030년에는 95조2,270억원 ▷2040년에는 160조1,840억원 ▷2050년에는 ‘마침내’ 256조6,440억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누적적자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한해에 발생하는 적자폭이 이처럼 엄청나다는 얘기다.

이같은 섬뜩한 전망은 “월간중앙”이 단독 입수한 행정자치부의 ‘공무원연금제도의 구조개선 방안’이라는 보고서에 의해 밝혀졌다. 이 보고서는 행자부가 지난해 1월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팀에 의뢰해 1999년 8월 작성되었다. 한국개발연구원 프로젝트의 연구진으로는 문형표 연구위원을 팀장으로 유경준 연구위원, 안홍기 주임연구원과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 배준호 한신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정부가 획기적인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연금제도 자체에 근본적으로 칼을 대지 않으면 공무원연금은 조만간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공직 사회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엄청난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정부는 태평이다. 보고서는 ‘조속한 조치’를 주문했지만 정부는 벌써 9개월째 꿀먹은 벙어리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몰라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 행자부는 공개적인 논의는커녕 정보공개법에 따른 보고서 공개 요구도 묵살하고 있다.

내년에 1조455억원, 10년 후에는 한해에 6조원이 적자

“그 기사 꼭 이번에 써야 합니까? 지금 그런 기사가 나가면 곤란합니다. 공무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정부 안(案)
이 확정된 것도 아닌데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지난 3월3일 오후 3시께.
행정자치부 복지과의 한 직원이 숨넘어가는 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전날 기자가 행자부 담당자를 찾아 전화를 걸었을 때에 비하면 말투가 누그러져 있었다. 처음 기자가 전화를 걸었을 때 그는 ‘보고서의 출처’가 어디인지 밝히라며 언성을 높였다. 담당자로서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의 우려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월간중앙”이 한국개발연구원(KDI)
이 1999년 8월 작성해 행정자치부에 전달한 ‘공무원연금제도의 구조개선 방안’이라는 꽤 두툼한 보고서를 단독 입수한 시점은 지난 2월. 마감 시간이 임박해 보고서를 입수한 탓에 꼼꼼히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데스크와 상의 끝에 일단 ‘한달 묵히기로’ 의견을 모았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숫자와 수학 공식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고 ‘그게 그거’같은 전문용어들이 수시로 출몰하는 이 보고서를, 3월호를 마감하고 2주일이 지나서야 기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찬찬히 훑어 보았다.

행자부 “KDI 보고서는 완성된 안이 아니다” 주장

각론에서 지나치게 전문적인 대목은 ‘뜻만 이해하는’ 선에서 넘어가고 처음부터 총론에 매달렸다. 그러니까 기자가 행자부에 전화를 건 때는, 머리 속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싶어 막 본격적으로 취재에 나서려던 시점이었던 것이다(문외한인 기자가 연금제도와 관련된 보고서를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정리가 되었다는 것은 ‘感’만 잡았다는 얘기다)
.

그러나 행자부는 예상대로 취재 초입부터 난처한 입장을 호소했다.
행자부 박재혁 복지과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행자부의 계획은 올해 6월말까지 공청회도 개최하고 여러 가지 개선안을 수렴해 단일안을 도출해낼 것이다. 이것을 16대 첫 정기국회인 가을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라면서 “KDI가 용역 보고서에서 제안한 개선안들은 아직 불완전하다. 지금은 현직 공무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개선안을 내놓는다는 원칙 정도만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하면서도 박과장은 “보도 시점을 늦출 수 없느냐”고 주문해왔다. 급기야 마감시간이 임박해 행자부의 담당 사무관이 기자를 찾아왔다. 그는 “KDI의 보고서를 공개하면 그것을 곧바로 정부의 확정안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다. 우리가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더 큰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주무부처로서의 곤혹스런 처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1999년 1월 행자부는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맡기면서, 그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 안’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이제 와서 ‘확정된 안’이 아니라는 설명은 그래서 궁색하다.

보고서 공개는 물론이고 논의 자체를 꺼리는 행자부의 태도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정치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세금을 털리는 국민들의 저항은 물론이고, ‘밥 그릇’을 줄여야 하는 전·현직 공무원 모두가 거세게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마디로 ‘표밭’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보고서의 탄생부터가 정치적이었다.

행정자치부는 1999년 1월 ‘공무원연금제도 개선을 위한 기획단’을 구성했고, 그 연구 용역을 한국개발연구원에 맡겼다. 당시 행자부는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야단법석이었다. 공무원연금이 2년째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그동안 애써 ‘유예’해왔던 불행이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국회와 언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고서야 호들갑을 떨면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행자부가 공무원연금제도 개선안 프로젝트를 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사실 개선안에 대한 검토는 그동안 숱하게 해왔다.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개발연구원이 내놓은 개선안도 여태까지 전문가들이 논의해왔던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어느 안을 ‘선택’하느냐 하는 의사결정이다. 행자부로서는 어느 쪽으로 개선하더라도 정치적 부담을 안아야 하는 고충이 있다.

공무원연금제도 개선은 다른 정책 결정과 달리 바닥난 연금기금을 ‘채워넣어야 하는’ 경우이다. 즉, 부족분을 국민의 혈세와 공무원의 월급에서 ‘까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책결정에 따라 희비의 곡선이 엇갈리는 문제가 아니라 이해당사자 모두에게 부담을 지워야 할 문제, 즉 납세자인 국민과 전·현직 공무원 모두로부터 욕을 먹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개발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맡긴 데에는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관료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위험회피 전략이 숨어 있다. 즉, 외부기관(한국개발연구원은 재정경제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이다)
의 ‘입’을 빌어 다른 부처 공무원들의 반발을 피해 보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또한 연금 수혜 당사자이자 정책결정 담당자인 행자부로서는 전문 연구기관에서 내놓은 개선안을 방패막이 삼아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겼다’는 공정성 시비에서 벗어나겠다는 속셈도 엿보인다.

그나마 공무원연금제도 개선 일정도 완전히 헝클어졌다. 원래 행자부는 1999년 4월 한국개발연구원으로부터 보고서를 넘겨받아, 5월부터 각계 전문가와 공무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99년 정기국회에서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할 방침이었다. 그렇게 해도 늦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지적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보고서는 8월에 제출되었고 그 이후에도 행자부가 각계 전문가와 공무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얘기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사실 공무원연금 개선안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극히 제한적이다. 연금이 바닥났기 때문에 ‘많이 걷고 적게 쓰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는 것이다. 많이 걷고 적게 쓰는 방법이란 ▷공무원들의 연금 혜택을 줄이고 보험료를 올리며 ▷국민 혈세를 공무원연금에 쏟아붓겠다는 것 말고는 없다. 이렇게 되면 당장 월급이 깎이는 100만명의 현직 공무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며, 그동안 공무원을 먹여살리는 데 허리띠를 졸라맸는데 또 다시 공무원들의 노후 보장을 위해 ‘추가로’ 돈을 내야 하는 일반 납세자들이 저항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진단을 도출하기 위해 보고서는 많은 자료를 동원해 가면서 공무원연금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 실상이 충격적이다. 보고서 20쪽 ‘재정수지 현황’ 중에서 재정수지 및 기금적립 현황, 그리고 연금기금의 운용 현황을 들여다보자.

▷재정수지 및 기금적립 현황
■공무원연금 기금은 1993년, 1995년을 예외로 하면 1960년 이래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97년에는 약 6조2,000억원의 기금이 적립되었으나 정부의 구조개혁 등으로 인한 퇴직자의 급증으로 연금 지출이 급격히 증가하여 1998년 현재 약 4조8,000억원임.

■제도 도입 이래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여 기금 축적이 계속되어 왔으나 이러한 추세는 1993년 최초로 역전되어 기금 잠식이 초래되었음.

■이후 1996년 보험료율(이전 11%에서 13%로)
인상으로 일시 흑자로 전환되었으나 1998년부터 공무원 정년단축, 인력감축 등 정부의 구조조정으로 퇴직자가 급증하여 1998년 말에는 4조8,000억원으로 급감하였음.

위의 숫자들이 현실세계에서 드러내는 실상은 누추하기 짝이 없다. 행자부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수십조원의 연금기금을 굴리면서 도대체 ‘미래예측’의 개념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기특한 것은 1996년도에 연금기금 수지가 439억원이나 ‘흑자로 돌아선’ 점이다.

욕먹더라도 고치라는 요구는 미래가 절망적이기 때문

그러나 절대로 칭찬할 일이 아니다. 이는 보고서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가장 손쉬운 해결 방법을 선택한 덕택이다. 보험료율을 11%에서 13%로 인상했으니 공무원과 정부가 반반씩 부담하는 현행 시스템상, 공무원의 부담은 5.5%에서 6.5%로 늘어나게 되었다.

어쨌든 드디어 ‘OB’(퇴직 공무원)
의 연금 수혜를 위해 ‘YB’(현직 공무원)
의 노후 설계를 망가뜨리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마디 더 하면 OB가 YB에게 부담을 안기는 구조만큼이나, 현직 공무원들의 부담 증가에 비례해 정부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결국 국민들의 등골도 더 휘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구조는 1999년에도 되풀이되었다. 보험료율이 13%에서 15%로 늘어난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직 공무원들은 퇴직한 선배들을 위해 또다시 1%의 추가 부담(6.5%에서 7.5%로 인상)
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지금 이 보고서가 현행의 급여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35%(현직 공무원과 정부가 각각 17.5% 부담)
까지 인상하지 않고서는 공무원연금의 재정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은, 어찌해볼 여지가 없는 선택이지만 이를 집행해야 할 행자부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월급의 17.5%가 자기와는 일면식도 없는 퇴역 공무원들의 노후생활에 투자되는 현실을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현직 공무원들은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행자부로서도 진퇴양난이다. 하지만 도리없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이런 섬뜩한 제안을 행자부에 제출하는 보고서에 버젓이 적시한 것은, 당장 국민과 공직사회의 저항에 부닥치더라도 조속한 재정개혁이 급선무라는 절박한 현실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만큼 미래가 절망적이다.

이 보고서가 1999년 8월에 작성된 까닭에 공무원연금의 실태와 관련된 모든 지표는 98년도까지만 나오고 있다. “월간중앙”은 1999년 지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뒤졌다. 아니나 다를까. 1년 사이에 사태는 더 악화되어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2001년에 공무원연금이 바닥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지난해 행자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그러한 참사는 한해 앞당겨지게 될 것이 틀림없다.
1999년말 현재 공무원연금은 딱 2조5,292억원이 남았다.

그런데 연금수지 적자 규모는 해마다 눈덩이 불듯 불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예를 들면 1997년 5,210억원의 수지 흑자(이것마저 연금회계 수지내역으로는 764억원 적자이지만 기금운용 수익이 생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를 기록한 뒤, 불과 1년만인 98년 들어서는 연금재정 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데 그 규모가 1조4,171억원이나 된다. 그리고 99년에는 적자 규모가 2조2,552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와는 반비례해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보유한 기금 규모는 해마다 줄어들었다. 97년 6조2,015억원에서 98년 4조7,844억원으로 줄고, 99년에는 2조5,292억원이 되었다.

연금관리공단 정부에 3조원 ‘추가로’ 지원할 것 요구

올해 연금재정 수지 적자가 ‘가볍게’ 관리공단이 보유한 기금 규모를 뛰어넘으리라는 것은 더이상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바로 올해 연금이 바닥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다급해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공무원 사용자로서 정부가 부담하는 법정부담금 1조4,000억원과는 별도로 2000년도 예산에서 3조원을 ‘추가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장 연금 지급이 중단되는 사태만큼은 막아보자는 뜻이었다.

정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1조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정부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 제공하는 1조원 지원은 ‘공짜’가 아니라 ‘융자 형식’이다.
나라에서 돈을 꿔다 퇴직 공무원들의 연금을 지급하는 임시방편인 셈이다. ‘지급 불능’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막았지만 결국 공무원연금기금의 재정상태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올해는 공무원연금이 ‘바닥’을 드러내는 원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더욱 우려할 만한 조짐은 공무원연금 고갈과 정부의 땜질 처방이, 조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 3년째로 접어든 정부 재정적자를 ‘굳히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미래예측’ 기능은 마비 상태였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지난 1998년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98년 연금재정 수지 ‘예상’ 적자가 8,229억원, 99년 연금재정 수지 예상 적자는 8,877억원이이었다. 그러나 <표1>
과 <표2>
에서 볼 수 있듯 실제로는 98년 1조4,171억원, 99년 2조2,552억원의 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연금 고갈의 원인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 때문

백번 양보해 ‘아주 먼’ 1년 후 시점, 즉 99년도 예상치가 1조3,000억원 이상이나 비껴나간 점은 이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바로 자신들이 자료를 작성한 당해년도인 98년의 적자 예상치가 무려 6,000억원 가량 차이가 발생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이 안된다.
지금 공무원연금은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다. 보고서는 26쪽 <재정수지전망>
에서 공무원연금의 현실을 진단한 뒤 ‘수술은 빨라야 한다’고 소견을 내놨다. 당장 거센 저항에 직면하더라도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재정수지 및 적립기금 전망
■1999년의 경우 3조3,470억원의 수지적자가 예상되며, 2000년에는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전망됨(국감 자료에 따르면 99년 발생한 실제 수지적자는 2조2,552억원이다)
.

■총수입은 1999년의 연금보험료 인상과 정부의 퇴직수당부담금의 증가로 계속하여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의 연금체계를 유지하는 한 급속히 증가하는 급여지출을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음.

■총지출은 1999년에는 이상적(異常的)
으로 5조6,120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되나, 2000년 이후 점진적으로 정상을 회복할 경우 2003년에는 평상수준인 4조원 정도로 다시 감소할 것으로 보임. 그러나 이후 연금 수급자의 급증으로 계속 증가하여 2050년에는 315조원 내외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됨.

■따라서 현행 체계를 유지할 경우 총지출이 총수입의 5.4배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됨.

■현재의 적립기금 규모는 지불준비금 정도에 불과하므로 이미 기금이 고갈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며, 이에 따라 재정개혁 조치가 시급한 상황임.

1999년 실제상황과 대비하면 예상치에서 약간의 오차가 있는 전망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공무원연금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금 이 시점에 2050년까지 전망한다는 것이 신기한 노릇이지만, 여하튼 ‘이대로는 안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공무원연금 기금이 98년에 이미 ‘지불준비금’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년간 병세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해졌다.
지금 공무원연금은 해마다 국민의 혈세로 ‘긴급 수혈’을 하지 않으면 막바로 지급불능 사태를 맞는 상황에 처해 있다. 정부는 긴급 자금을 투여해서라도 당장 발생하는 지급불능 사태는 막아야 하지만, 언제까지 미봉책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그 미봉책조차 어차피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며 불행을 유예하는 일이기 때문에, 정부는 이 참에 ‘맞을 매를 미리 맞는’ 전략을 택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충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보고서에서 그렇게 하라고 강력히 권유하고 있다. 보고서는 초지일관하게 재정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수술을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 작업에 연구진으로 참여한 한국개발연구원의 유경준 연구위원은 “정부가 얼마만큼 지원하든 연금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하지 않으면 불행은 심화되고 반복될 뿐이다. 문제 해결 없이 세금을 공무원들(의 후생복지)
을 위해 무작정 쏟아붓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공무원연금제도 개선은 빨리 손댈수록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공무원연금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귀중한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미국 정가에서 ‘대통령의 임기는 집권후 6개월 이내’라는 농담이 있는 것처럼, 모름지기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개혁은 집권 초기에 ‘힘으로’ 추진해야 하는 법이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집단적인 반발과 표 계산 때문에 손을 못대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제도 개선이 딱 그 짝이다.

지난해 8월부터 여론을 수렴하고 개혁작업에 돌입했어도, 비록 늦기는 했지만 ‘불행의 싹’을 보다 일찍 자를 수 있었다. 그러나 연금제도개선기획단을 설치하고 99년도 중에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여 2000년부터 개선된 제도를 실시하겠다는 행자부의 계획은 변변히 말도 꺼내보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었다. 예상되는 공무원과 국민의 반발 사이에서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한 것이다.

현실과 원칙 사이에서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며 모순을 뒤로 미루기만 하던 행자부는 이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1월3일 연두기자회견에서 공무원연금에 대해 ‘한마디’로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후손들이 모든 불행 짊어져

김대통령은 지난 1월 연두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는 공무원들이 기본적인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종합적인 복지대책을 수립해 나갈 계획입니다. 봉급을 임기중 중견기업 수준으로 인상할 것입니다. 능력과 공로에 따른 보상제도도 적극 실현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연금제도의 기본틀을 유지하여 공무원들의 기존 권익을 보장하겠습니다.”
DJ가 연두기자회견에서 굳이 공무원연금에 관해 ‘한 줄’ 언급한 것은 물론 공직사회의 심상치 않은 저항 움직임 때문이었다. 1999년 가을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작업 일부가 언론에 노출된 적이 있다. 보고서 중에서도 ‘대안’ 부분의 일부가 보도되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개발연구원 프로젝트팀은 이 보도의 여파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연구소를 폭파해 버리겠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그런 보고서를 작성했느냐”는 협박전화가 폭주했고, 연구진들의 E메일에는 전·현직 공무원들이 보낸 협박편지로 가득찼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DJ의 말 한마디로 연금제도 개선 따위의 얘기는 쑥 들어갔다.
이것은 명백히 오류의 반복이다. 전임 정권에서도 똑같은 기회가 있었지만 물거품이 되었다.

1993년 당시 총무처는 처음으로 공무원연금에 적자가 발생하자 한국개발연구원에 의뢰해 연금제도를 고치려고 했다. 그러나 구조적인 개선을 제시한 연구 결과를 무시하고, 96년도부터 보험료율을 1% 올리고 96년 이후 공무원 임용자부터 60세 이상이 되어야 연금을 받도록 하는 땜질식 처방에 그쳤다. 당시 총무처는 이러한 ‘사소한 개선’으로 공무원연금 재정이 향후 15년은 끄떡없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지금 허풍도 이만저만한 허풍이 아니었음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당시 총무처가 이처럼 미봉책으로 사태를 모면하려 했던 이유는, 전·현직 공무원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만큼은 절대로 미봉책에 그쳐서는 안된다고 주문하고 있는 이 보고서가 앞으로 어떤 운명을 걷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미 폐기처분될 운명에 놓였지만 말이다.
현 정부는 국민과 후손에게 모순을 떠넘기고 있다.
보고서는 39쪽 <공무원연금제도의 구조분석>
에서 ‘현행 공무원연금제도의 부담 및 급여구조의 분석을 통해 공무원연금이 지니고 있는 분배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분배 효과’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는데 사실은 ‘모순의 전가’ 구조를 지적하는 말이다.

▷공무원연금제도의 구조 분석
■현행 공무원연금은 후세대 공무원의 부담을 전제로 성숙기 이전에 은퇴하는 공무원에게 막대한 소득이전을 행하고 있으며 이제 고갈 위기에 직면해 있음(지금까지 은퇴한 공무원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혜택을 줌으로써 현직 공무원 및 장차 공무원이 될지도 모를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멍에를 지어주는 구조인데, 현재의 자금 고갈의 원인은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 때문에 발생했다는 뜻이다)
.

■공무원연금은 소득비례형 연금이므로 세대내 소득이전 효과는 없고 세대간의 소득이전 효과가 큼(앞에서 지적한 모순의 세대간 전가 구조를 지적하는 말이다)
.

■그런데 후세대 공무원이 부담할 수 있는 갹출금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2000년 이후 정부 부담금의 비율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실정임(구멍난 적자를 정부 예산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뜻)
.

■정부 부담금의 증대는 곧 국민 일반의 세 부담 증대로 이어지므로 공무원연금이 지닌 분배효과는 후세대 공무원 외에 일반 국민에게까지 영향을 미침(결국 최대 피해자는 납세자인 국민이라는 얘기다)
.

현재의 공무원연금제도는 수혜자인 퇴직 공무원 입장에서 보면 더없이 ‘환상적인 보험상품’이다. 현재 공무원연금제도에 따르면 20년 이상 장기근속한 공무원의 경우 나이에 상관없이 퇴직시 일시금으로 받거나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는데, 불입액 대 환급액의 비율이 7∼11.3배(일시금을 택할 경우에는 1.4∼1.8배)
나 된다. 물론 이는 70년대 가입자의 경우인데, 80년대 이후 공무원이 된 사람은 이같은 선배들의 연금 수혜에 못미친다.

연금 수혜를 둘러싸고 불공정 시비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어쨌든 자신이 낸 돈보다 퇴직후 가져가는 돈이 훨씬 많은데, 이는 기본적으로 부담을 후세에 전가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따라서 현직 공무원들과 국민 입장에서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현재의 공무원연금은 ‘최악의 보험상품’이 되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이 이처럼 처치곤란한 괴물로 변한 것은 역대 정권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공무원들을 다독거리느라고 연금제도를 ‘누더기’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공무원연금기금은 1998년부터 적자가 계속 누적되어 2001년(2000년의 誤字인듯)
에는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어 심각한 재정위기에 당면해 있음. 기금 고갈후 필요 적자보전액은 2001년에는 약 1.5조원, 2010년 6조원 및 2020년 31조원 수준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어 정부의 부담 능력을 크게 초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이러한 재정불균형의 근본 원인을 “제도개선 과정에서 보험수리적으로 기대급여 현가가 보험료 현가에 비해 월등히 높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조금 걷고 많이 주는 구조를 지적하는 말이다. 예를 들면 1960년 제도 도입 당시 지급 개시 연령을 60세로 제한했던 것을 1962년 폐지한 것은 연금재정 불균형에 악영향을 끼쳤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퇴직수당 신설(1991년 1월)
및 재해부조금(1973년)
, 사망조위금(1984년)
등 각종 단기급여를 빈번히 신설한 것도 재정을 악화시킨 요인이 되었다. 적립 기금을 펑펑 써왔던 것이다.

우리나라 퇴직 공무원들의 근속년수별 연금 수혜는 선진국에 비교해 지나치게 높다. 가령 20년 근속자의 경우, 한국의 퇴직 공무원이 다달이 받는 연금 급여는 최종임금의 50%인 반면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미국은 36.25%, 프랑스는 40%, 독일은 37.5%에 불과하다.

30년간 연평균 임금 인상률 18%, 보험료율은 그대로

정부는 공무원연금 급여 혜택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온 반면, 보험료 갹출률은 70년대 이후 동일한 수준을 유지해왔다. 60년대 이후 공무원 임금수준의 급속한 향상(연평균 18%)
에도 불구하고 갹출료 부담 수준은 고정되었다. 이러니 연금재정이 극도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정부는 보험료 수준을 인상(96년 5.5%→6.5%, 99년 7.5%)
하였으나 이미 연금재정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여서 기금고갈 방지에는 턱도 없었다. 현행 공무원연금의 장기적 재정자립도는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공무원연금 재정을 결정적으로 악화시킨 요인은, 수혜 자격에서 연령 제한을 두지 않은 규정 때문이다. 공무원 퇴직(노령)
연금제도 중 급여 지급에 대한 연령제한을 두지 않은 경우는 우리나라뿐이다. 대부분 선진국은 60세 이상이 되어야 연금 수급 자격을 부여한다. 미국은 20년 이상 근무자의 경우 60세를 넘어야 연금을 받을 자격을 갖게 되고, 일본은 25년 이상 근무해야 65세부터 연금을 받으며, 프랑스는 15년 이상 근무한 퇴직 공무원이 60세를 넘어야 연금 수혜 자격이 주어진다. 보고서는 ‘노령연금의 취지에 입각하여 공무원연금의 지급개시 연령을 제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 때문에 행정부처에서 (고위)
관료를 지내고 다시 산하단체나 다른 기관에서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이 ‘월급은 월급대로 받고, 연금은 연금대로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양쪽에서 수입이 생기는 경우는 급여지급에 대한 연령제한을 두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20년 이상 공직에 있다가 퇴직하면 언제든지 일시금으로 연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현 공무원연금 운용이 본래 목적인 ‘노후보장’의 성격을 이탈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현행 공무원연금제도는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분석에 바탕해서 보고서는 ‘개선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방향은 세가지다.

▷지급개시 연령제 및 감액연금제의 도입.
■지급개시연령제 도입: 지급개시연령을 2000년부터 52세로 제한하고, 매 2년마다 1세씩 인상하여 2016년에는 60세가 되도록 조정. 2016년 이후에는 국민연금제도의 연령제한과 일치시켜 나감(2033년부터 65세)
.

■조기 감액연금제도의 도입: 연령제한 도입에 따른 혼란 방지를 위해 해당 제한연령 도달 이전에 조기 연금희망자에 한해 감액연금을 지급. 퇴직 시점을 기준으로 해당 제한연령 1세 미달시마다 기본연금액의 5%씩 감액지급(전 지급기간에 적용)
. 단 해당 제한연령과의 차이가 5년 이내인 퇴직자에게만 적용(최대 삭감률 25%)
. 즉 2002년 퇴직자의 경우 48세부터 신청할 경우 기본연금액의 75%를 받을 수 있도록 하향조정하며, 52세 때 신청하면 기본연금액의 95%, 53세 때부터 신청하면 기본연금액 100%를 받을 수 있다.
▷급여 산정방식의 조정.

■개선방안: 최종보수월액 기준을 전 재직기간 평균보수월액 기준으로 단계적으로 전환.
▷소득심사제도의 강화.

■개선방안: 현재 공공의 직(職)
에 국한된 소득심사제도를 전직종으로 확대 검토. 민간기업 재취업자 및 사업소득자 등 전 직종을 포함. 소득 파악을 위해서는 국세청의 과세자료 및 국민연금의 기준소득 자료 등을 활용. 현행 퇴직후 재취업시 50% 일정률 삭감 방식을 소득 수준에 따라 비례적으로 삭감하는 방식으로 전환.

특히 세번째 ‘소득심사 제도의 강화’ 항목은 앞으로는 퇴직후 재취업하게 되면 연금을 소득 규모에 따라 삭감하겠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퇴직후 연금수령액이 100만원인 어떤 사람이 새로 취업해 월 50만원 이하의 소득을 올릴 경우 연금은 한푼도 삭감되지 않지만, 70만~100만원의 소득을 올리면 연금 수령액이 25만원 깎이고, 25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면 한푼도 못받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은 보고서 연금제도 개선을 위한 ‘두가지 대안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에 공무원들로부터 협박전화가 쇄도해 업무가 마비됐던 바로 그 대목이다.
<대안 1>
과 <대안 2>
가 현행 연금제도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아래 도표를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보고서가 분석한 기본 취지와 개선 효과를 간략히 인용했다.

[대안1] 연금-퇴직금 분리 모형:
공무원과 민간근로자의 퇴직급여 수준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공무원연금 지급률을 하향조정하고 퇴직수당을 민간 법정퇴직금 수준으로 상향 조정.

▷연금지급률의 조정
■개선방안: 현행 지급률 수준에서 기초부문 10%를 삭감하여 수급구조 불균형을 완화. 현행은 최종보수월액×〔10%+재직년수×2%〕이고, 개선안은 평균보수월액×〔재직년수×2%〕. 이러한 제도개선은 공무원연금의 급여 수준을 국민연금의 지급률과 일치시키는 효과.

■정부 부담 개선 효과: 현행 공무원연금제도를 민간근로자와 같이 국민연금에 해당하는 공적연금 부분과 법정퇴직금 부분으로 분리하는 안으로써, 공적연금 부분은 급여수준을 하향조정하고 법정퇴직금 부분은 민간근로자 수준과 동일하게 조정하는 방안임.

따라서 공무원과 정부가 2분의 1씩 부담하는 공적연금 부분은 축소되는 반면 정부가 전액 부담하는 법정퇴직금 부분이 확대되어 실제로 정부부담액이 증가되는 결과를 초래함. 또한 공적연금 부분의 경우도 연금보험료 수준을 연차적으로 현행 7.5% 수준에서 10.5% 수준으로 상향조정함에 따라 정부 부담액은 늘어나게 됨. 2000년 정부의 재정부담은 1조8,740억원, 2010년에는 6조3,730억원이 됨. 이는 보험료의 상향조정에 따른 부담 증가와 퇴직금을 민간근로자 수준으로 조정하는 데 따른 부담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현행 제도 유지시 정부 부담액 4조6,650억원보다는 많은 것이나, 정부 적자보전액을 합한 10조6,150억원보다는 크게 감소된 금액임.

▷퇴직수당제도의 조정
■현 퇴직수당을 근로기준법상의 법정퇴직금 수준으로 상향조정. 퇴직금적 성격에 비추어, 퇴직수당 지급비용은 고용주인 정부가 전액 부담.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연금-퇴직금 분리모형’은 더 짜증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보험료를 늘리고 혜택을 줄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연금혜택이 줄어드는 만큼 퇴직금을 일반기업 수준으로 올리는 데 비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20년 이상 근무 퇴직자, 아무때나 받는 제도 고쳐야”

[대안2] 현행제도 수정·보완 모형:
▷개선방안:공무원연금의 급여산식 및 퇴직수당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급여 개시 연령 제한제의 도입 및 평균보수월액 기준 급여 산정 등을 통해 구조적 수급불균형을 점차적으로 개선.

▷정부 부담 개선 효과:현행 공무원연금제도의 근간을 그대로 유지하되 연금수급 개시 연령, 최종보수월액 기준을 전 가입기간 평균보수월액 기준으로 조정, 봉급인상률 기준 연동방식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준 연동방식으로의 전환 등 <대안1>
의 제도개선 골격은 그대로 이행한다는 정책대안임. 다만, 정부의 부담에서 민간의 법정퇴직금 지급 수준만큼을 정부가 부담하되 퇴직수당은 현행대로 지급함으로써 퇴직금 정부 부담과 실제 퇴직수당 부담금의 차액만큼을 연금 재정수지 개선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임. 이 방안은 현행 공무원제도에 국민연금 기능과 퇴직금 기능이 혼합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서 퇴직금 기능의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접근방식임.

이에 따른 정부 예산부담은 2000년의 경우 보험료부담 기준 1조1,400억원, 퇴직수당 등 부담금 1조2,470억원을 합한 2조3,780억원이 되며, 이중 퇴직금 부담금 중 5,590억원은 재정수지 개선으로 이전됨. 2010년의 경우 보험료 부담금 3조6,600억원, 퇴직수당 등 부담금 3조5,190억원을 합한 7조1,790억원이 되며, 이중 퇴직금부담금 중 1조4,680억원은 재정수지 개선으로 이전됨.

“KDI 두 대안 중 아무거나 선택해도 제도개혁 효과”

<대안1>
과 <대안2>
의 정부 부담은 거의 비슷하지만, <대안1>
은 정부 부담 증가분이 공무원들의 퇴직급여 상향조정에 사용되는 반면, 〈대안2>는 정부부담 증가분이 연금재정 수지 개선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즉, 국민 입장에서 보면 공무원연금이 폭삭 망해버리는 것이 가장 속편한 것이겠지만, ‘돈 잡아먹는 귀신’인 공무원연금의 재정구조를 개선한다는 점에서는 <대안2>
가 그나마 나은 처방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느 쪽이든 행자부가 총선 전에 공론화,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기에는 국민과 공무원 양쪽을 다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보고서를 검토한 성균관대 안종범(재정학)
교수는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제시한 대안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하더라도 제도 개혁의 효과는 달성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요한 것은 이들 개혁안을 기득권자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추진할 것인가에 있다. 기득권자의 기득권 보장도 중요하지만, 개혁을 미뤘을 경우 발생할 국민의 부담, 특히 우리의 후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교수는 또한 “행정자치부가 보고서를 공개하고 공론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의 저항과 반발을 의식해 논의 자체를 총선 이후로 늦추는 것은 큰 문제”라고 일침을 가했다.

정부만 욕을 먹을 일이 아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의 기금 운용은 방만하기 그지없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6년 동안 공무원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은 10% 전후로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이는 민간 투자기관의 운용수익률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수준이고, 시중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보다 낮다. 선진국에서는 유권자들이 연금기금의 운용수익률에 따라 정권이 왔다갔다 할 정도로 민감한 정치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연금기금의 운용수익률 따위는 관심권 밖에 있다는 점도 문제다.

물론 공무원연금 기금을 ‘고수익-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가끔 외신을 타고 선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파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곤 하는데, 이는 거개가 ‘고수익-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본전까지 날린 경우다. 전문가들은 돈을 떼일 염려가 없으면서 시중 금리보다 높은 이자를 보장하는 수익증권 등 신탁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가입자의 후생복지를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전국 주요도시에 자체 회관을 보유하고 있고, 골프장을 비롯한 체육시설과 콘도미니엄, 심지어 해수욕장까지 갖추는 현실은 아무래도 납득이 안된다.
보고서는 이러한 기금 운용이 “노후보장을 기본 목적으로 하는 공무원연금의 본래 취지에서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처럼 유동성이 매우 낮은 부동산에 돈을 묶어 놓는다는 것은 기금운용 면에서도 연금재정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오민수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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