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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코스피 상장사까지 농락하는 조폭 자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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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조직폭력배들의 자금이 사회 곳곳으로 진출하고 있다. 유흥업·도박·사채업·매춘 등으로 번 시꺼먼 돈을 환한 곳에 투자하는 것이다. 불법 자금을 ‘세탁’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굴리는 돈의 규모도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장 흔한 경우가 부동산을 매입해 세를 놓는 경우다. 검은 돈은 주식시장도 노린다. 증권가 정보통과 한패거리가 돼 주가조작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덩치가 작은 코스닥 종목이 제물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제는 허접스러운 회사를 ‘금융시장의 메이저리그’ 격인 코스피에 상장시킬 정도가 됐다.

 다산리츠는 2008년 4월 국토해양부에서 국내 첫 자기관리리츠(상근 임직원이 직접 자산을 투자·운용하는 회사)로 영업을 인가받았다. 창업자가 상장을 시도했으나 자금 조달에 실패하자 조폭 출신 사업가 조모씨를 끌어들였다. 부회장으로 영입된 조씨는 취임하자마자 단기 사채 179억원을 조달했다. 지난해 8월에는 부산 해운대에서 270억원짜리 오피스텔 임대사업을 한다며 150억원을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 이 덕에 다산리츠는 한 달 뒤 자기관리리츠로는 두 번째로 코스피에 상장될 수 있었다.

 상장 직후부터 이들은 회사 돈 빼먹기에 나섰다. 임원들에게 거액의 상여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조폭들은 유상증자 및 상장 성공 소식을 듣고 조씨를 협박해 원금의 몇 배나 되는 이자를 붙여 돈을 갚으라고 폭행했다. 조폭의 전주(錢主)는 여성 트로트 가수, 개그맨, 전직 프로야구 선수, 고급 룸살롱 마담 등이었다고 한다. 조폭 출신이 현역 조폭들의 협박에 못 이겨 회사어음을 막 발행하다 전모가 들통나게 됐다.

 결국 회사는 9개월 만에 상장폐지됐다. 코스피시장 최단기간 상장폐지라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회사 측 거짓말에 속아 유상증자에 참여한 투자자 297명은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됐다. 금융당국은 어떻게 이런 엉터리 같은 회사가 코스피에 상장될 수 있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 공개해야 한다. 상장심사에 허점은 없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그게 앞으로 유사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