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Quick And The Dead

중앙일보

입력

샘레이미는 순식간에 스타가 된 감독으로 기억될 것이다.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이블데드'에서 보여준 그의 재기발랄함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많은 이유는 저예산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표면적인 사실 이상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감독들이 기존의 틀을 답습하는 동안 젊은 감독 샘레이미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장르인 공포영화를 통해 자신의 영화세계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그의 작품들에서 속속 확인되는 기발한 영화적 상상력들은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주는 배척성마저도 무마시키기에 충분했다. 영화에 문외한인 이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으로, 기존 감독들에게는 신선한 촉매제로서의 역할을 샘레이미라는 인물이 해냈던 것이다. ('이블데드' 한편만으로도 그것은 입증된다) 물론 이 영화도 회를 거듭하면서 특유의 냉소와 유머를 잃어갔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기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다크맨'과 같은 반헐리우드적인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괴짜같은 이력은 공포영화에서 서부영화라는 뜻밖의 장르(샤론스톤, 진해크만, 러셀크로우, 거기에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까지 가세한)로 이 영화를 통해 전이되었다. 이 희한한 서부극은 선과 악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반복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샘레이미 특유의 - 마치 3류 만화같은 유머가 군데군데 숨어있다. 음악을 맡은 알란실베스트리의 스코어는 샤론스톤으로 집중되어 있는 카리스마를 효과적으로 보조하는 역할에 충실하다. 악을 응징하는(사실은 '응징해야한다'라는 당위성이 강하다. 응징이전에 복수의 의미가 더 강하기 때문이리라) 상징적인 존재인 여성 총잡이의 운명은 온통 남성 우월주의뿐인 서부라는 공간에서 더 강력한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알란실베스트리는 이 상황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관악기를 우선적으로 배치한 후 점차적으로 풍성해지는 현악기의 웅장함으로 훌륭히 병치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치들이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것은 샘레이미 특유의 시각이 이전작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인데, 만약 그가 멋들어지게 총을 돌리는 총잡이들의 행동에 집착하기 보다는 괴물의 시점으로 움직이는 카메라의 기발한 워킹을 잊을 수 없었던 '이블데드'의 그것이 아쉽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MTV식의 속도감 넘치는 화면도 좋지만 때로는 자신의 고전적인 사유방식이 오히려 신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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