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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로 시작된 E2비자 열기 '그 후 10년'

미주중앙

입력

자녀의 신분 문제로 고민하는 소액투자(E2) 비자 소지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2000년대 들어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온 '사오정' 세대들로 체류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포토]

단순 소액투자비자…영주권 신청자격 없어
부모따라 온 자녀들 21세이후 '신분' 붕떠
신분유지 고민…가족과 '생이별' 경우도

혹독했던 IMF 기간이 지나고 2000년대 들어 한국의 30~40대 가장들이 삶의 탈출구로 '미국행'을 택하기 시작했다.

불안한 경제 앞에 당장 1년 2년 앞의 '내 모습' '내 가정'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구조조정 등과 함께 경쟁이 심해지면서 45세면 정년을 해야 한다는 '사오정'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자 한국 생활에 지친 일부 사오정 세대는 눈물을 머금고 고국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퇴직금 등을 모아 종자돈을 만들어 소액투자 비자(E2)를 통해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실제 2000년 들어 E2 비자 신청자들은 매년 급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그동안 열심히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가족들과 함께 미국 생활에 정착도 해나갔다. 그러나 요즘 그들이 다시 울고 있다. 청소년 때 부모를 따라온 자녀가 21세가 되면서 체류신분 변경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E2비자는 흔히 '투자이민' 비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다. 영주권 신청자격이 주어지는 EB5 '투자이민' 비자와 달리 E2비자는 단순 소액투자 비자다. 따라서 미국에서 투자한 사업이 실패할 경우 체류 신분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 질 수 있다.

특히 최근 미국의 경기 침체로 인해 사업체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며 여러 난관에 부딪히는 한인들이 늘고 있다. 한국에서 온 '사오정'이 미국서 '삼장법사'(삼년 장사해보니 이민법 때문에 죽겠다)가 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빠…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되겠죠."

북가주에서 공부중인 딸이 전화로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김연중(51.가명)씨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딸의 스물 한번째 생일이 곧 다가오기 때문이다. 6년 전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소액투자 비자(E2)를 통해 미국에 정착한 김씨는 그동안 랜초쿠카몽가 지역에서 조그마한 일식집을 운영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하지만 곧 21세가 되는 딸은 더이상 E2 투자자 자녀로서의 신분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비자를 학생 비자(F1) 등으로 바꿔야 하는 방법뿐이다.

김씨는 "그동안 여러 고비를 넘겨가며 비즈니스를 운영해 어느 정도 정착을 했다 싶었는데 이제는 딸의 체류신분 문제가 걱정"이라며 "딸이 생일이 지나면 신분 문제를 독립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학교를 졸업한다 해도 요즘 미국에서 합법적 신분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지 않느냐"고 하소연했다.

김씨의 딸은 2년 뒤 대학 졸업 후 취업비자 등으로 미국 체류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면 가족과 '생이별'을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난 10년간 한국으로부터 E2 비자를 통한 미국행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IMF 직후인 2000년도 이후에는 '사오정(45세면 정년을 해야 한다는 말)' 세대들이 한국을 떠나 E2 비자를 통해 미국으로 오는 사례가 급증했다. 실제 국무부 '비이민 비자 발급 보고서'에 따르면 E2 비자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지난해 총 3777명이었다. 이는 2000년도(1388명) 들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E2 비자로 미국 내 업체를 인수하는 한국인의 숫자는 일본 영국 독일에 이어 4위를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당시 함께 온 자녀가 청소년이었다가 대학에 들어가는 나이가 되면서 '신분문제'로 고민하는 E2비자 신분의 한인들이 늘고 있는 것.

이필재 변호사는 "불경기 속에서도 열심히 일해서 E2로 정착은 잘 했지만 자녀의 신분 문제로 또 한번 고민하는 한인들이 많다"며 "E2 비자 한인들 중에 보통 한달에 5~6건은 자녀의 체류 문제 때문에 상담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웅 변호사는 "자녀가 있는 부모들은 자녀 교육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미국행을 택할 때 공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E2 비자를 선호한다"며 "그렇게 미국행을 택한 한국의 중년들 중에는 청소년이던 자녀가 벌써 21세가 되면서 신분문제 상담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E2 비자는 배우자가 일을 할 수 있고 자녀가 공립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런 매력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약점은 이 비자가 결코 영주권이 아니란 것이다. 결국 자신과 가족의 신분 유지를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비즈니스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

지난 2001년 한국에서 은행을 그만두고 퇴직금 등을 모아 E2비자를 통해 마켓을 운영해오던 유상민(54.가명)씨는 최근 경기 침체로 인해 비자 갱신이 쉽지 않은 상태다.

유씨는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마켓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대학에 간 아이의 신분이 유학생으로 바뀌면서 비싼 학비까지 감당하다 보니 부모로서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어떻게든 버티다가 아이가 대학교를 졸업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E2 비자를 통해 신분 유지가 어려워지자 부모들조차 유학비자 등 다른 비자로 체류 연장을 시도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서경석 변호사는 "최근 몇 년 사이 경기가 나빠지면서 E2비자 소지자들이 사업체 접는 것을 고려하면서 신분유지나 변경 문제로 고민하는 상담이 많아졌다"며 "도중에 한국행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순간 자녀의 신분이 붕 뜨기 때문에 대부분 자녀를 미리 학생신분으로 변경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E2 비자란

30만달러 투자로 합법체류
수익내여 비자갱신

소액투자 비자(E2)는 사업 운영을 목적으로 미국에 체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발급되는 비이민 비자다.

E2 비자 업종은 한국에서의 경력을 살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곳에 와서 비자를 받기 쉬운 업종으로 바꾼 경우가 많다. 주로 카페나 의류업 일식집 잡화점 리커 스토어 덴탈랩 등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있다.

또 사업체를 통해 미국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E2 비자의 조건이기도 하다.

이민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액투자 이민의 투자금은 보통 30만 달러 가량이다.

많은 외국인이 합법적인 미국 이민을 꿈꾸며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데 비해 투자할 돈이 있는 사람은 E2 비자를 통해 미국행을 노릴 수 있다.

E2 비자를 받게 되면 자녀가 공립 학교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배우자가 워크 퍼밋을 받아 미국 내 합법적 취업도 가능하다. 또 충분한 돈을 벌어들이는 한 E2 비자는 계속해서 갱신이 가능하다.

하지만 E2 신분으로는 영주권을 신청(스폰서 받을 경우 제외) 할 수 없고 계속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2년 마다 있는 E2 비자 갱신에 실패할 수 있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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